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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저 들판

욕(欲)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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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죽어 있을 시간과 죽어 있을 땅이 남아 있듯이 누구에게나 살아 있을 시간과 살아있을 영토는 남아 있는 법.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제 썩은 속살로 하나의 순을 기르듯 나는 비로소 상한 눈을 뜨고 꿈꾸며 기다리는 것들의 생애를 본다. ........ 친구여, 형제여, 사랑하는 내 이웃들이여, 나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하나의 씨앗처럼 혼자서 깊어 가리니 많은 씨앗과 뿌리와 풍년가를 거느리고 돌아올 옥토의 새 주인을 가르쳐다오. 죽을 곳에 죽어서 죽음보다도 더 넉넉하게 돌아올 새 옥토의 주인을. 
이 시에서 시인에게는 ‘죽어 있을 시간’과 ‘죽어 있을 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시간’과 ‘살아 있을 땅’이 필요하다. 시인은 ‘숨쉬는 무덤’뿐인 세상, ‘난세의 저녁 때 귀를 틀어막고 울던 시절’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발을 돌리고 ‘비로소 상한 눈을 뜨고’ 희망의 꿈꾸기를 시도한다. ‘살아 있을 시간’ 동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자신은 썩어 없어지지만 새로운 생명의 결실을 만들어 내듯이 자신도 세상 밖에서의 꿈꾸기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갈망한다. 시적 화자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다가올 새세상의 주인을 기다린다. 친구와 형제와 이웃과 함께 ‘씨앗과 뿌리와 풍년가를 거느리고’ 올 ‘옥토의 새주인’을 맞으러 길 떠나기에 나서고 있다. 
손광은 외, [우리 시대의 시인 연구], 시와사람, 2001, 502~5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