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 가 무릎을 꿇어야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럼에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시는 이육사가 <문장> 1940년 1월호에 발표한 <절정(絶頂)>이라는 시이다. 민족의 수난과 항쟁을 치열하게 노래하여 항일시의 절정을 이룬 시가 고도의 상징적인 수법을 쓴 덕분에 삭제되지 않고 검열을 통과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라고 한 첫 줄로 일제의 억압을 나타냈다. 시련이 극도에 이른 “서릿발 칼날 진” 곳에 이르러 굴종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다 했다. “강철로 된 무지개”는 무지개 같은 희망이 시련을 이기는 강인한 투쟁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암시한 말이다. 극도에 이른 절망은 열렬한 희망이라는 역설로 겨울과 봄, 현재와 미래의 구분을 없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