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별 깜박이고 달빛조차 참담한데
이때의 조치는 술책 아닌 것이 없었다.
외부대신이라는 녀석 재주라고는 없으면서
평소에 글줄이나 읽었다고 이름이 높더니
이름 훔쳐 세상 속이는 짓 어찌 오래리오.
본색을 드러내어 “가”라고 붓으로 썼네.
누가 헤아렸으랴, 오백 년 종묘사직이
이 종놈 손으로 남에게 넘어갈 것을.
이는 호남 선비 이기(1848~1909)가 장지연의 사설을 읽고 쓴 <독황성보>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는 나라를 넘겨주는 무리를 준열하게 규탄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일본군이 몰려들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자 문무백관은 다리를 떨고 있는 광경을 그리고, 매국노의 책동을 꾸짖었다.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을 겨냥한 대목이 그 절정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