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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에로스의 화살을 찾아서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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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보람은 오직 하나였다. 사랑에 빠진 존재들의 온갖 파란만장한 러브스토리를 관람하는 재미. 에로스는 장난삼아 화살을 쏘지만, 당사자들은 마치 그가 아니면 세상이 끝날 듯이 오직 한 사람만 쳐다보는 것. 그것을 바라보는 순수한 재미만이 큐피드의 보람이었다. 큐피드는 다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신과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신명 넘쳤기 때문이다. 올림푸스 12신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며 신들 중에서도 가장 철딱서니 없는 에로스가 ‘사랑의 신’이 되어 올림푸스의 신들까지 쥐락펴락하게 된 것은 왜일까. 사랑의 불가해한 시작을 관장하는 힘이 ‘장난꾸러기 신의 말썽’처럼 본래 어처구니없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저 사람을 왜 사랑하는지, 도대체 왜 저런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순간. 그 난감함을 뚫고 기어이 솟아오르는 한 사람을 향한 무구한 열정. 그것이 모든 사랑을 관통하는 최초의 신비일지도 모른다. 에로스의 화살놀이에는 장난기가 다분했지만 계산속은 없었다. 오늘날의 에로스들은 어떤가. 에로스 산업 혹은 큐피드 산업이라고 통칭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결혼정보업체들과 연애 전문 강사들이 각종 루트를 통해 활약하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예전보다 더 잘 ‘설명’하게 되었다. 신의 장난이나 사랑의 묘약 같은 신비로운 언어들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좀 더 합리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차이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연애라는 ‘행위’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에서 보면 짝사랑, 만나지 못하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사랑의 어엿한 한 자리를 차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순탄한 연애’보다도 사랑의 본질에 더욱 육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곁에 있어도 끝없이 결핍감을 느끼는 것. 이루어지고 있어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듯한 불안을 느끼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니 말이다. 그러나 연애의 풍속도가 사랑의 감정보다 더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는 감정의 밀도보다 행위의 효율성이 중요해진다. 그 사람과 어디서 무엇을 먹으며 데이트를 했는지, 스킨십의 ‘진도’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그 사람의 조건과 배경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이와 같은 현실적인 상황 분석이 사랑의 감정보다 더욱 중요해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람들은 에로스의 신비로운 도움 없이 좀 더 주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자기 연애의 감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여울, <사랑의 빈곤, 연애의 풍요를 넘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123-125 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2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