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들의 한시는 대개 관습적이라는 평을 받는다.(박무영, 「기녀한시의 비틀림과 비틀기」) 이는 사랑을 주제로 했다고 하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신윤복, <상춘야흥> (간송미술관 소장)
기녀한시의 창작 방식은 적어도 연회석에서 남성을 ‘향하여’ 발화되는 기녀의 한시가 일정 부분 즉흥적인, 집단적 창작의 결과라는 것을 말해준다.
남성의 시 세계에서는 일종의 희작이거나 습작일 뿐인 이러한 관습이, 기녀한시의 경우 여성 일반에게 익숙한 익명성이라는 요소와 기녀의 상업성이라는 요소가 결합하면서 기녀한시만의 독특한 성격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한 수를 더 살펴보도록 한다.
노화의 팔에는 누구 이름 새겼나 蘆花臂上刻誰名
눈 같은 피부에 선명한 먹 글씨여. 墨入雪膚字字明
대동강 물 다하는 것 본다 하여도 寧見大同江水盡
처음 맹세 끝끝내 저버리지 않으리. 此心終不負初盟
(노화, 「증노어사贈盧御使」)
홍중인洪重寅(1677~1752)이 지은 <<시화휘성詩話彙成>>에는 이 시와 관련한 일화가 전한다. 노화는 조선 성종 시대 장성현의 기생으로 용모와 재예가 당대 으뜸이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인근 사내들이 생업을 버린 채 모두 노화에게 매달렸고, 이것이 고을에 폐단을 끼치게 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그녀를 징치하기 위해 어사를 보낸다.
이 사실을 들은 노화는 미리 주모로 변장하여 어사를 기다렸다가 오히려 그를 유혹하고는 자신의 팔뚝에 후일 약속의 증표를 삼기 위해 그의 이름을 새긴다.
그리고는 훗날 어사가 노화를 불러다가 징치하기 직전 이 시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어사에게 노화를 주게 되었고, 결국 폐단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이 시는 지극하고도 주도적인 사랑의 면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읽힐 수 있다. 사랑을 획득하기 위한 방식이 무서울 정도로 적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제작 배경을 알고 보면, 노화의 사랑은 주도적이든 적극적이든 간에 ‘만들어진 사랑’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살아남기 위해 꾸며낸 사랑으로, 이것이 진심 어린 사랑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