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사랑이 있다고 하려면 존재하는 것에는 모두 사랑이 있다고 해야 한다. 우리 둘레에서 수렴하며 올라가는 의식들 어디에도 사랑은 빠지지 않는다. 이미 플라톤이 그걸 알아 그 내용이 대화편에 실려 있다. 그 이후에 니콜라스 쿠자누스 같은 사상가들이 있어 중세 철학이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 사랑의 힘으로 세상의 조각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이건 무슨 비유가 아니다. 시 이상이다. 우리 몸을 잡아끄는 무슨 중력은 자연을 실제로 움직이는 그 무엇의 이면이거나 그 그림자다. 우주의 ‘샘’과 같은 그 힘을 느껴보려면 사물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된다. 거기에는 끌어당기는 얼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느낌을 주지만 사실 사랑은 ‘우주’의 얼이 개체에 수렴될 때 개체 속에 직접 남는 흔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직 사랑만이 개체들을 하나 되게 함으로써 개체를 완성할 수 있다. 남과 하나가 되면서 ‘내가 된다’는 모순된 행위를 실현하는 것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