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는 신비가가 신의 본질 자체로 보는 사랑을 창조적인 힘으로 표상할 수 있다. 이 사랑은 대상을 가졌을까? 어떤 한 숭고한 음악은 사랑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다른 음악은 다른 사랑일 것이다. 거기에는 서로 다른 두 감정의 분위기, 서로 다른 두 향기가 있을 것이고, 이 두 경우에 사랑은 그 대상이 아니라 그 본질에 의해 성격지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역동적인 사랑, 어디에도 말을 걸지 않는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신비가들은 우리가 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듯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만장일치로 증거한다.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왜 신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가? 이러한 것이 바로 신비 체험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의 결론이다. 창조는 철학자에게는 신의 피조물들을 창조하고 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들을 자신에게 모으기 위한 하나의 기도처럼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