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친구’-아리스토텔레스의 필라우시아(자기 사랑)에 따른-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과 우정의 관계에 이미 들어가 있어야 한다.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한 우정은 타자 친구에 의한, 그리고 타자 친구를 위한 애정과 엄밀하게 상관적인 자기 애정(auto affection)인 것처럼 말이다.
자기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은 상관적이다.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 또한 사랑할 수 있다.
폴 리쾨르. {타자로서의 자기자신}, 김웅권 역(서울: 동문선, 2006), p. 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