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느닷없이 나를 세차게 흔들어 깨웠다. 그녀의 음성은 이제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그래도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뜨거운 것을 숨기기 위해 눈꺼풀을 꾹꾹 눌러 참으면서 내처 잠이 든 척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음성이 아직 흐트러지지 않고 있는 건 오히려 그 노인뿐이었다. "가만 두거나. 아침 길 나서기도 피곤할 것인디 곤하게 자고 있는 사람 뭣하러 그러냐." 노인은 일단 아내의 행동을 말려 두고 나서 아직도 그 옛 얘기를 하는 듯한 아득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당신의 남은 이야기를 끝맺어 가고 있었다. "그런디 이것만은 네가 잘못 안 것 같구나. 그 때 내가 뒷산 잿등에서 동네를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던 일 말이다. 그건 내가 갈 데가 없어 그랬던 건 아니란다. 산 사람 목숨인데 설마 그때라고 누구네 문간방 한 칸이라도 산 몸뚱이 깃들일 데 마련이 안됐겄냐. 갈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침 햇살이 활짝 퍼져 들어 있는디, 눈에 덮인 그 우리집 지붕까지도 햇살 때문에 볼 수가 없더구나. 더구나 동네에선 아침 짓는 연기가 한참인디 그렇게 시린 눈을 해 갖고는 그 햇살이 부끄러워 차마 어떻게 동네 골목을 들어설 수가 있더냐. 그놈의 말간 햇살이 부끄러워서 그럴 엄두가 안 생겨나더구나. 시린 눈이라도 좀 가라앉히고자 그래 그러고 앉아 있었더니라……."
‘나’는 휴가를 맞아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간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떠한 빚도 없다고 생각하여 어머니의 지붕 개량 요구를 무시한다. 어머니는 지붕 개량을 통해 방 한 칸을 더 늘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여 아들을 배려하는 마음에 기인한 것인데 ‘나’는 이러한 마음을 애써 무시한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어머니와 대화를 하며 속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마지막 날 저녁, 아내와 어머니의 대화는 ‘나’와 어머니가 함께 걸었던 눈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는 떠나고 둘이 걸어온 길을 혼자 걸어 돌아가야 했던 상황을 잠든 척 듣고 있던 나는 그제야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이청준, [눈길]
마희정,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고향탐색의 과정 ; [귀향연습], [눈길], [살아있는 늪]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회 학술발표회자료집}, 한국현대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