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감독님 … 아, 오늘 날씨 좀 춥죠? 옷을 든든하게 입었어야 했는데, 그
러니까 저는, 제가, 내가 왜 이러지, 아, 저, 네! 저, 감독님 사랑하는 것 같아요.
아니, 확실해요. 저 감독님 사랑해요. 미쳐버릴 것 같아요.”
비행기가 곧 추락하겠으니 승객 여러분은 기도나 하시라는 안내방송을 들은
것 같았다. 까페 천장에서 산소마스크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맥이 탁 풀려버린
나는 휴고 보스 양복이 구겨지거나 말거나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
콘도에만 들어오면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자기 공간과 역할을 찾아낸다. 물론 그 모델은 가족이다. 조윤숙은 벌써 그릇들을 씻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쌀을 안치려구요.” “제작비에서 다 나오는데 궁상떨지 마. 나가서 사 먹으면 되지.” “밥을 뭐 하러 사 먹어요.”
그녀는 은근히 고집스러운 데가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꺼내 전선을 연결하고 상태를 점검했다. 설거지를 마친 그녀는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나를 끝내 일으켜 세워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끌고 갔다. 어느새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랄라라라. 바구니에 물건들을 담던 그녀는 차오르는 그 무언가를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듯 쇄골에 손을 얹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행복해.”
나는 맥주와 국산 위스키를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녀가 경탄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 “감독님은 술도 잘 드시잖아요.” “그게 뭐?” “멋지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