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맞은편에 앉은, 아니, 내가 그 맞은편에 앉은...김이선이 있다. 동갑이며 인근의 여고를 다녔는데 현재는 치매를 앓고 있다. 기억이 자주 왔다 갔다 한다. 게다가 선셋증후군이 있어 해질녘 이후엔 배회가 심한 편이다. 수줍음이 많고 공부를 곧잘 하던 모범생이었다. 지난 봄 이곳에 들어왔는데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뒤늦게 밤잠을 설친 다음날, 총무과에 내려가 김군을 구슬렸다. 김이선金二善, 내가 알던 그 김이선이 확실했다. 아는 분이세요? 김군의 질문에 으응, 그냥...이라고는 했지만 으응, 그냥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인근 여고에서 그녀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청아한 피부와 단정한 외모...우수 어린 커다란 눈동자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예부의 부장직을 맡았었는데 그해 가을의 합동 문학제에서 윤동주의 시를 낭송했다. <별 헤는 밤>이었다. 그 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로 시작해, 애잔한 키타반주를 배경으로 잔잔히 시를 읽어내려가던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어머님...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강당의 지붕이 사라지고 순간 밤하늘의 별들이 내 머리로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나에게 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