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건곤일회첩> 일부
(갤러리 현대 소장)
사실 이 시조들은 섹스에 대한 은유로 점철되어 있다. ①에서 ‘번옥燔玉’은 가짜 옥을 말하며 ‘진옥眞玉’은 말 그대로 진짜 옥, 즉 상대방인 기녀 진옥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는 ‘살송곳’으로 뚫어 볼까 하는데, 여기에서 ‘살송곳’은 ‘육추肉錐’, 다시 말하자면 남자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진옥은 정철의 속뜻을 간파하고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화답한다. ①에서 말한 ‘번옥燔玉’에 대해 ②에서 ‘섭철鍱鐵’로 응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철鄭澈’을 ‘정철正鐵’로 받아친다.
그리고는 ‘살송곳’에 대해 ‘골풀모’로 대치시킴으로써 노래를 완성한다. ‘골풀모’는 본래 불을 피우기 위해 바람을 불어 넣는 풀무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남자의 성기로 은유된 ‘살송곳[육추肉錐]’을 받아 들여 녹여버리는 여성의 성기로 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은유들로 점철된 노래들에 대해 단순히 추잡하고 속되다고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당대 대문장가였던 정철을 흠모하던 한 여인이 그와의 육체와 정신을 합일하고자 하는 숭고함을 드러낸 노래이자 참사랑의 백미라고까지 평가할 까닭도 없을 것 같다.
사랑과 성애, 특히 사대부와 기녀라는 신분적 관계에서는 별개라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 작품을 두고 “외설적인 작품에서조차도 기녀의 당당함에서 우러나오는 조소적 심리를 느낄 수 있다.”(이화형, 「기녀들의 조소와 신뢰회복 의지」)고 보는 견해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사랑노래 혹은 이별의 정한과 슬픔을 노래한 작품에서조차도 이러한 감정들의 진위 여부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