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신혜(神惠) 왕후 유(柳)씨는 정주(貞州) 사람이니 삼중(三重) 대광(大匡) 유천궁(天弓)의 딸이다. 유천궁의 집은 큰 부자(大富)이어서 고을 사람들이 장자(長者)집이라고 불렀다. 태조가 궁예의 부하로서 장군이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정주를 지나 가다가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말을 쉬우고 있는데 왕후(后-유천궁의 딸)가 길 옆의 시냇가에 서 있었다. 태조가 그의 얼굴이 덕성스러움을 보고 그에게 “누구의 딸이냐?”고 물은즉 처녀는 대답하기를 “이 고을(邑)의 장자집 딸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태조가 그 집으로 가서 유숙하였는데 그 집에서는 군대 일동에게 아주 풍성하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그리고 처녀(后)로 하여금 태조를 모시고 자게 하였다. 그 후는 서로 소식이 끊어져서 정절을 지키고자 머리를 깍고 여승(尼)으로 되었다. 태조가 이 소식을 듣고 불러다가 부인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