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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를 기다림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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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 전화가 등장하기 이전, 수화기는 전선으로 전화기 본체에 달려 있었고, 그 본체는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는 방이나 거실 한 쪽에 붙들려 있었다. 사랑 소통이 이 전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던 시절, 기다림은 아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나는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방안을 왔다갔다해본다. 그 친숙함이 보통 때 나를 위로해주는 갖가지 물건들, 회색지붕, 도시의 소음, 이 모든 것이 무기력해보이고 분리되고, 마치 인간이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황량한 별자리 또는 자연처럼 얼어붙어 보인다.” (…) “기다림은 하나의 주문이다. 나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렇듯 하찮은, 무한히 고백하기조차도 어려운 금지 사항들로 짜여있다. 나는 방에서 나갈 수도, 화장실에 갈수도, 전화를 걸 수도(통화중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전화를 해오면 괴로워하고(똑같은 이유로 해서), 외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그 자비로운 부름을, 어머니의 귀가를 놓칠까봐. 기다림 편에서 볼 때 이런 모든 여흥에의 초대는 시간의 낭비요, 고뇌의 불순물이다. 왜냐하면 순수한 상태에서의 기다림의 고뇌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전화가 손에 닿는 의자에 앉아 있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여기서 기다리는 사람은 방에 붙들려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오리라고 기대된, 혹은 반드시 와야 할 전화를 받기 위해 그는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불안해한다. 사랑 관계가 존속되고 있음에 대한 유일한 보증, 애인의 전화를 기다리는 그는 “방에서 나갈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다. “전화가 손에 닿는 의자에 않아 있기만을” 요구하는 이 사랑 소통의 기다림 때문에 그는 “외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휴대전화는 우리로 하여금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방에 있지 않아도, 화장실에 가더라도, 심지어 외출을 해서도 우리에게는 늘 “전화가 손에 닿는”다. 이전 시기 전화기가 붙들려 있던 공간적 제약이 사라졌기에, 우리의 기다림은 특정 장소에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이제 그 어디에서도 사랑 소통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김남시, <사랑이라는 소통의 매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1-22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