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사랑 소통에서의 공백 또는 사이시간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그런 이유로, 사랑 관계는 사랑 소통이 존속하는 한 존재하는 관계다. 나와 그/그녀가 소통하고 있는 한—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나는 우리 사이에 사랑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 관계는 소통의 지속을 통해서만 감지되고, 그를 통해서만 유지된다. 그렇기에 이 관계에서는 하나의 말, 하나의 행위, 하나의 만남과 그 다음 번의 말, 그 다음 번의 행위, 그 다음의 만남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시간’이 사랑 관계의 존재론을 결정짓는다. 그것은 첫째로 사랑이라는 소통이 갖는 자기 지시적 성격과 관계가 깊다. 사랑 소통에서 하나의 진술, 하나의 행위는 그것의 의미론적 내용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어제 잠을 못자 피곤해”라는 말은 그것이 발화되는 지금, 이곳에서의 사태를 지시하기 보다는 “너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기호일 수 있다. “나 데리러 올 수 있어?”라는 물음은 내 시간의 객관적 가용성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데리러 올 만큼 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가 판정되는 시험대가 된다. 하나의 진술과 그에 대한 반응들은 늘 이전까지의 모든 진술, 과거의 소통 전체에 대한 메타적 기호로 작용한다. 애인이 행한 하나의 진술, 내가 한 한 가지 행동은, 이전까지 과거의 소통들과 관계 맺고, 과거 소통의 지평 속에서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 그렇기에 단 하나의 진술과 행동이 과거의 모든 소통을 순식간에 전혀 다른 성격의 것으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 사랑 소통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언어)행위가 사랑 소통 전체를 종결지을 잠재성을 갖는 이유다. 그렇기에 사랑 소통에서의 공백 또는 사이시간은 결정적이다. 그 공백, 그 사이시간은 사랑 관계의 지속이 어느 순간이라도 유예 또는 철회될 수 있는 잠재성을 담은 시간이다. 그 사이시간이 다음의 진술, 다음의 행위로 이어지지 않으면 사랑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는, 그 상대를 향해 아무 진술도,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은 그저 ‘소통하지 않음’일 뿐이다. 직장 동료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건 그저 그럴만한 용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료와 나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사랑 관계에서 ‘소통하지 않음’은 그 관계의 존속을 위협한다. 내가 그/그녀에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그녀가 내게 반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관계는 언제든지, 존속하기를 그만둘 수 있다.  
 
김남시, <사랑이라는 소통의 매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8-19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