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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고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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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최인훈은 꿈을 통해 자신만의 ‘고현학’적 탐구를 수행한다. 그에게 한국의 근대가 형성되어온 방식은 꿈이 출현하는 방식과 같다. 이 점은 마지막 세 번째 서사에 등장하는 영화 「조선원인고」에 대한 발표자의 작중 해설에서 드러난다. 우리의 유적은 제 꼴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합니다. 그뿐 아니라, 햇수 짚어내기에 결정적인 요소의 하나인 매몰 상태도 엉망입니다. 고석기 시대의 유물이 신생대에 파묻혀 있는가 하면, 그 바로 밑에는 아주 최근의 것과 닮은 기계붙이가 있는 형편입니다. 이것은 시대 가르기가 불가능한 경우인데, 난점은 한 시대의 유물 서로 사이에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화장실 자리에 고려 자기가 놓여 있습니다. 어느 땐지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으나, 불행한 우리 조상의 역사에 뒷간 기물까지 고려자기를 쓴 시대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책 속에 피임 도구가 끼여 있는 화석이 나옵니다. 작전 서류 속에 연애 편지가 섞여 있기도 합니다. 장군이 시장 앞에 서 있는 것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쏭달쏭입니다.[······]이런 예를 들기로 치면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난처한 것은, 전혀 성질이 다른 조각으로 이루어진 일기의 인물 화석입니다. 즉 머리는 신부. 얼굴은 배우. 가슴은 시인. 손은 기술자. 배는 자본가. 성기는 말의 그것. 발은 캥거루의 족부.[······]이것은 누가 보나 희극입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이지러지고, 우습게 겹치고, 거꾸로 붙은 화석은, 고난에 찬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서글픈 자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의 역사는, 생남 기념으로 아버지가 심어준 나무가 아름드리 노목으로 자란 뿌릿가에, 그 아들의 늙은 뼈가 묻히는 식의 역사도 아니었고, 한 도시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기 위하여 작전을 바꿨던 어떤 지역의 그것처럼, 복받은 역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최인훈, <<광장/구운몽>>) 인용문에 따르면 첫번째 서사인 독고민의 에피소드는 「조선원인고」라는 다큐 영화의 내용에 해당하는데, 그 압축되고 모순적인 서사는 그대로 한국의 근대에 대한 훌륭한 알레고리라 할 만하다. 최인훈이 보기에 한국적 근대란, 고석기 시대의 유물이 신생대 지층에서 발견되고 바로 그 밑에 최근의 기계붙이가 함게 매몰되어 있는 근대(주변부 자본주의 특유의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대성!’), 변기와 고려자기가 어떠한 양식mode적 구분 없이 병존하고, 성경책 속에서 피임도구가 발견되는 요지경식 근대(교양 없는 천민자본주의!), 그리고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창조물처럼 이리저리 짜깁기된 분열적 주체들의 근대(탈식민적 혼종 정체성!)이다.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 “생남 기념으로 아버지가 심어준 나무가 아름드리 노목으로 자란 뿌릿가에, 그 아들의 늙은 뼈가 묻히는 식의 역사”는 전혀 꿈꾸어 볼 도리조차 없었던 한국적 근대의 형상을 표현하기에, 비동시적인 시간대들이 병존하고 등장인물은 항상 압축된 혼성 인물이며 공간은 이리저리 뒤틀려 정연한 구획을 애초부터 포기해 버린 서사, 그러니까 ‘꿈’처럼 좋은 형상은 달리 없을 것이다. 최인훈에게 한국의 근대는 꿈과 같다. 그러나 꿈을 통한 최인훈의 고현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광수가 길을 터놓은 근대 특유의 모방 욕망과 이중 간접화의 소설화 문제에 관해서도 최인훈은 할 말이 많다. 오늘날 토끼란 동물은 존재치 않는다. 토끼의 뒷다리는 말의 뒷다리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중풍에 걸렸으며, 밤송이처럼 동그란 등은 집채 같은 코끼리 등이 되지 못한 열등감으로 애처롭게 꼬물거린다. 토끼는 이미 토끼가 아닌 것이다. 말의 멋없이 민숭한 낯짝은, 토끼 같은 타고난 미모를 갖지 못한 불만으로 늘 괴롭고, 코끼리보다 모자란 무게와 그 가는 다리 때문에 그는 괴로운 짐승이다. 코끼리는 그만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병신스럽게 육중한 물체성에 구역질이 난다. 토끼 같은 깨끗한 가벼움이 부럽고, 말의 비할 수 없이 멋진 우아함에 대한 부러움으로, 그의 기둥 다리는 짊어진 자학 때문에 오히려 무겁다. 오늘날 토끼, 말, 코끼리란 짐승은 없다. 다만 ‘토끼-말-코끼리’ 혹은 ‘말-토끼-코끼리’ 혹은 ‘코끼리-토끼-말’이란 짐승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에 만족한, 따라서 무자각한 인간이란 원리적으로는 현대와 가장 먼 것이다. 하기야 현대에도 소박한 인간이야 사실상 있긴 하지만, 조만간 진화(?)하게 마련이고, 안 그렇더라도 분열의 분위기는 널리 퍼져 있다.(최인훈, <<광장/구운몽>>) 달리 사족을 더 달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이 구절은 현대인의 이중 간접화에 대한 절묘한 우화를 제공한다. 직접적 초월에의 욕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토끼는 말과 코끼리를, 말은 토끼와 코끼리를, 코끼리는 토끼와 말을 질투하고 모방하는 사회가 현대다. 욕망의 대상은 사라지고 중개자들 간의 질시와 쟁투만 만연한 시대, 이런 의미에서라면 현대에 진정한 욕망도, 확고한 자아 정체성도 존재할 자리는 없다. 요컨대, 조신 설화에서 시작된 한국문학의 꿈-서사는 1962년 최인훈에 이르러 어떤 단절의 지점을 형성한다. 꿈-서사는 최인훈의 <<구운몽>>에 이르러 완전히 근대화된다. 그것은 ‘꿈의 고현학’이라 할 만한데, 이 고현학은 1962년에 아시아 변방의 한 작가가 다다른 사유의 지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예지적이다.  
 
김형중, <꿈 속의 사랑>,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13-116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1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