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꿈-작업과 최인훈의 <<구운몽>>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이광수의 <<꿈>>이 출간된 지 15년 후, 최인훈은 <<구운몽>>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쓴다. 입몽과 각몽에 의해 나뉘는 삼단 구성은 여전하고, 환생한 주인공 독고민이 이러저러한 계기로 여덟 선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서사도 원작과 같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꿈속 사랑이야기는 단순히 서사의 편의를 위한, 혹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나 소재의 수준을 넘어선다. 세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우선, 최인훈은 꿈을 근대적인 방식으로 이해한다. 즉 프로이트적인 방식으로, 압축, 전위, 시각적 형상화, 상징화 등과 같은 꿈-작업에 대한 근대적 지식 체계를 작품에 그대로 수용한다. <<구운몽>>은 꿈-작업의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그는 작품의 주인공들을 모두 ‘압축’해 혼성 인물로 만든다. 모두 세 단계의 서사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첫 번째 서사의 주인공인 독고민은 두 번째 서사의 주인공 김용길 박사와 그 전기적 약력이 겹친다. 또 세 번째 서사의 주인공인 빨간 넥타이의 전위 시인(그의 이름도 ‘민’이다)과도 겹치고, 첫번째 서사의 감옥 에피소드에서 독고민에게 애인 숙의 사진을 건네던 죄수와도 겹친다. 독고민은 김용길 박사이고 시인 민이며 감옥의 죄수다. 게다가 그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에게 각각 다른 정체성을 부여한다. 그는 시인이면서, 무용 선생이고, 혁명군 지도자였다가, 죄수가 되기도 한다. 독고민이 소설 내내 찾아다니는 애인 숙 역시 혼성 인물인데, 낯익은 인상과 볼의 점을 매개로 해서, 에레나였다가 미라였다가 시인의 애인이었다가, 고관대작의 부인이었다가, 보조 간호사였다가, 관음보살이 되기도 한다. 팔선녀의 변형인물들인 이 여인들 모두가 숙이다(임금희, 「최인훈의 소설 『구운몽』 연구」, <<새국어교육>> 70호). 압축뿐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프로이트가 말한 꿈의 문법 그대로, 시간적이거나 인과적인 접속 관계가 거의 무시된다. 감옥은 문 하나를 열면 술집이 되고, 낯선 길은 순식간에 자취방에 이르는 계단을 마련한다. 독고민의 행동은 구체적인 시간대를 확인할 수 없는 공간에서 벌어지며, 결국 소설 속 사건이 며칠에 걸쳐 일어났는지조차 모호해진다. 개연성 없는 이야기들이 꿈에서처럼 아무렇지 않게 전개되고, 이질적인 사건들이 마치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병치된다. 이처럼 최인훈의 <<구운몽>>은 꿈을 소재로 했을 뿐 아니라, 꿈의 문법을 그대로 옮겨놓은, 그 자체로 꿈-작업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김형중, <꿈 속의 사랑>,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12-113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1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