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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조신 설화’, 이광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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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르에 따르면 근대화의 진척과 모방 욕망의 증가는 비례한다. 이유인즉, 신이나 절대자, 정신이나 이념 같은 초월적 가치가 사라진 자리를 ‘차이 없는 타인들’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중개자가 절대적 지위를 가지지 못할 때, 그래서 나와 별반 차이가 없는 평범한 장삼이사일 때, 모방 욕망은 증식하고 강화된다. 가령 신은 숭배의 대상일 뿐 모방의 대상은 될 수 없지만, 이웃집 사내는 충분히 모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는 끝없는 시기와 질투의 시대이다. 근대의 이중간접화(욕망의 대상은 사라지고 경쟁하는 중개자들만 남은 상태)를 염두에 두면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신으로 비칠 것이다”(<<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라고 쓸 때, 지라르가 의미하고자 한 바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근대인들이 서로를 신처럼 떠받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신의 자리를 이제 나와 똑같은 ‘서로들’이 차지해버렸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문장이야말로 이광수의 <<꿈>>을 조신 설화의 모작에 불과하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근거가 된다. 물론 이광수의 <<꿈>>에 근대적 소설로서의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등장하는 묘사문들은 “천하에 이름난 산이 다섯 있으니, 동쪽의 태산, 서쪽의 화산, 가운데의 숭산······” 운운하며 시작하는 <<구운몽>>의 도입부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고 관습적인 수사와 결별한 디테일들이 특징적이다. 상황도 개연성이 있고, 주인공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는 연대기적 서술을 피해 스토리텔링과 플롯을 구별하고 있는 점도 역력하다. 요컨대 이언 와트가 <<소설의 발생>>에서 말한 근대 소설의 특징들을 그런대로 갖추고 있는 문장들이다. 이어지는 조신의 캐릭터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도 ‘옥골선풍’ 류의 스테레오 타입은 지양되고 대신 지극히 개성적인 면모의 인물이 탄생한다. “평목과는 정반대로 조신은 못생긴 사내였다. 낯빛은 검푸르고, 게다가 상판이니 눈이니 코는 모두 찌그러지고 고개도 비뚜름하고 어깨도 바른편은 올라가고 왼편은 축 처져서 걸음을 걸을 때면 모으로 가는 듯하게 보였다.” 같은 문장들이 그렇다. 게다가 이후 조신이 김흔의 딸 달례와 야반도주하여 겪게 되는 가난의 세목, 살인에까지 이르는 도망자의 불안 심리, 그리고 신분 격차에 따른 갈등 등이 세밀하게 그려짐으로써 나름대로 근대 소설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의 근대성이 작품의 형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할 때, 이 작품이 여전히 타설적 주제 의식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적되어야 한다. 도망자로서의 삶이, 화랑 모례(달례의 약혼자)에 의해 결단남으로써 각몽의 단계에 진입할 때, 달례와 조신의 깨달음은 결국 부귀영화 일장춘몽의 주제를 되풀이한다. 이광수는 그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 그랬듯이,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 낀 과도기적 인간이었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그러나 다소 의아할 정도로 길어지는 소설의 결말부가 있다. 모례에 의해 달례와 조신의 상징적 죽음 장면이 연출되고 둘은 자신들의 죄를 충분히(사실은 개연성이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뉘우친다. 달례는 목 대신 머리카락이 잘려 중이 되고, 조신은 감옥으로 보내진다. 감옥에서 조신은 “이 속에서 기쁨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이 생활을 수도하는 고행으로 삼으려는 갸륵한 결심을 하였다. 조신은 오래 잊어버렸던 중의 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는 일심으로 진언을 외우고 염불을 하였다”. 조신의 설화나 김만중의 <<구운몽>>에서라면 이제 충분히 각몽의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김형중, <꿈 속의 사랑>,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08-110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0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