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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돈환 ‘양소유’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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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이루지 못한 소원과 입몽, 애정 소원의 성취, 각몽과 깨달음이라는 「조신 설화」의 삼단구성은 이후 김만중의 <<구운몽>>에서 다시 차용된다. 성진이, 낮에 만난 팔선녀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기 위해 법당에 향로를 피우고 부처를 염송하기 시작하자 스승 육관대사가 보낸 동자가 그를 부르러 온다. 입몽이다. 이후 육관대사의 미움을 산 성진이 염라대왕에 의해 인간 세상의 양처사댁 독자로 다시 태어나 겪게 되는 일들은 모두 꿈에 해당한다. 그리고 팔선녀와 차례차례 만나 운우지정, 부부지연을 모두 맺고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린(이 이야기들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양소유가, 노년의 어느 날 홀연 나타난 노승의 법력으로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 장면이 각몽에 해당한다. 구성 뿐 아니라 이 작품의 주제 역시 조신 설화와 많이 다르지 않다. 도교와 유교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는 하나, 결국 인간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영화와 애욕이란 것이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주제는 여전하다. 최소한 겉으로는 개인 내면의 애정 욕망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구운몽>>에서 성진이 꾼 꿈은 조신이 꾸었던 꿈과는 사뭇 다른 데가 있다. 성진의 꿈은 단순히 인생무상의 교훈을 설파하기 위해서라고 보기엔 필요 이상으로 방탕하다. 물론 그는 각몽의 순간에 “이 분명 사부께서 내 생각의 그릇됨을 알고 꿈을 꾸게 하여 인간 세상 부귀와 남녀 간 정욕이 다 허사인 줄 알게 함이로다”라는 깨달음을 얻지만, 불교적 세계관에 익숙했던 당대의 독자들이라면 몰라도, 프로이트에 더 익숙한 현대의 독자들에겐 먹히지 않을 소리다. 성진은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무마하기엔 놀아도 너무 놀았다. 그의 삶은 거의 대부분 연애 행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민음사판 <<구운몽>>의 역자도 지적한 바 있다. 양소유는 이들 여인들을 만나면서 주위의 시선이나 윤리 규범을 돌아보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나면 한순간도 참지 못해 당장 정을 통하려고 드는 성급함을 보여준다. 계섬월이나 적경홍과의 관계는 그녀들이 기생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하더라도 진채봉이나 동정용녀인 백능파와의 관계는 상식을 뛰어넘는다. 특히 백능파를 만났을 때, 아직 백능파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몸에 비늘이 남아 있었다. 백능파가 그런 몸으로 남자를 대할 수 없다고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소유는 상관하지 않고 곧장 정을 통했다. 정경패를 소개받았을 때는 굳이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여장을 하고 대갓집 안방에 들어가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양소유를 두고 정경패는 ‘여색에 굶주린 아귀’와 같다고 했다.(송성욱, 작품해설, <<구운몽>>) 송성욱만 아니라 여러 연구자들이 양소유의 이와 같은 성적 방탕에 대해 지적하고 있거니와, 특히 김병국(<<한국 고전문학의 비평적 이해>>, 서울대출판부, 1995)은 이를 김만중의 전기적 사실과 연결시켜 ‘모성 콤플렉스’ 혹은 ‘돈환 콤플렉스’라 칭하기도 한다. 귀신(가춘운)도 인어(백능파)도 기생도 공주나 권세가의 여식도 마다하지 않고, 그들과 운우지정을 나누기 위해서라면 여장이나 접신도 마다하지 않는 이 정력가의 모험담은 사실 각몽 순간 몇 마디 후회의 언사로 덮어질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에로틱하다. 덧붙여 당시의 가족관이나 농경 사회의 관례에 비추어 보아 양소유가 2처 6첩과의 사이에 각 한 명씩, 고작 여덟 명의 자식들만을 두었다는 사실도 주의를 요한다. 다른 말로 양소유의 성은 생식과 무관한 용도로 활용되는데, 알다시피 생식의 목적에 사용되지 않는 성은 항상 도착(양소유와 적경홍의 복장 도착, 그리고 양소유의 여성적 기질과 처첩들의 동성애 성향!)과 에로티시즘을 유발한다. 요컨대 성진의 꿈은 작가 김만중의 성적 욕망이 환상적으로 실현되는 무대라 보아도 무방할 듯한데, 그렇다면 <<구운몽>>은 조신 설화와 달리 개인의 은밀한 내면적 욕망을 꿈의 서사에 담아 표현한 최초의 근대적 작품이라 칭해야 할까? 그러나 그러기엔 이 작품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다. 무엇보다도 ‘질투의 부재’ 때문에 그러하다. 과도한 에로티시즘 외에 김만중의 <<구운몽>>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질투’ 감정의 부재다. 서로가 서로를 처와 첩으로 천거할 정도로 양소유의 처첩들은 화해롭다. 계섬월은 ‘잠자리에서’ 만옥연과 적경홍, 그리고 정경패를 양소유가 반드시 만나보아야 할 천하절색으로 소개한다. 그중 적경홍과는 여성 동성애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우정을 넘어서는 연모의 감정을 드러낸다. 정소저와 그녀의 시비 가춘운의 관계도 이에서 그리 멀지 않다. 후에 모두 양소유의 처나 첩이 된 뒤에도 이들 여덟 여성들은 하나같이 양소유를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성껏 받들 뿐, 시기나 질투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로 읽히거니와, 17세기 조선 사회의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개인적 질투 감정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거나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질투라고 하는 감정은 ‘모방 욕망’ 혹은 ‘삼각형의 욕망’의 다른 이름일 터인데, 르네 지라르는 공적인 서사에서 이 감정이 등장하는 예를 근대 소설의 효시인 <<돈키호테>>에서 처음 발견한다(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신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고대에도 질투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형이상학적인 양상을 보이면서 서사문학 주인공들의 심리와 이야기의 구조까지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은 근대적 장르로서의 소설이 탄생하면서부터이다. 그런 질투가 김만중의 <<구운몽>>에는 없다. 그런 이유로, 김만중의 <<구운몽>>은 여전히 전(前)소설적이고 전근대적이이었던 것이다.  
 
김형중, <꿈 속의 사랑>,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05-108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0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