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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시절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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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우직함은 그녀의 자발성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할머니들이 싸움을 통한 자기 치유 또는 존엄의 회복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 빚진 바 크다. 그녀들은 그 회복의 과정을 자신들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가는 재미”라고 규정하거니와 다른 말로 ‘꽃 시절’이라고도 부른다.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 하나를 보도록 하자. 기분이 좋으면 영희는 다 늙은 사람들을 언니 오빠라고 부른다. 김공님, 오명순도, 임애기도, 노분례도 신이 났다. 성이라고는 불러봤어도 언니라는 말은 영희한테 처음 들었다. 어쩐지 젊어진 기분이 군청 시위 나갈 때면 옷도 이왕이면 밝고 예쁜 것으로 입고 나갔다. 뻣뻣하기 가죽 같은 얼굴에나마 ‘구루무’라도 바르고 나갔다. 그래야 영희가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공님은 왜 공장이 아닌 관청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작은아들이 왜 공장 앞에서 군청으로 갔느냐고 물었다. “왜냐, 군청이 허가를 내주기 때문잉게.” “아따, 우리 용수막떠기가 엄청 똑똑해져부렀네.” “내가 언제까지나 고무차대기같이 살아야 쓰겄냐. 요번 일 아니었으면 언제 나 같은 사람이 군수고 도지사고 국회의원이고 장관 앞에서 큰소리 한번을 쳐봤겄냐고오.” “아이고, 그 높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까지나?” “그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이면, 그 높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맹글어졌거냐, 다아 우리 손에서 맹글어졌제. 그렇게 그 사람들은 우리가 허라는 대로 혀야 써어. 그래야 되는디 안 그렁게 악을 썼제.” 그렇지만 군수는 뇌물을 먹고 감옥에 갔고, 도지사는 바쁘다고 뒷문을 내뺐고, 해결해보자고 한 국회의원은 감감무소식이고, 장관은 아무 말도 않고 악수만 하고 가버렸다. 돌공장 덕분에 높은 사람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게 되었다. 물론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들은 여전히 오합지졸이고 싸움은 지리멸렬한 것이다. 그녀들은 “악이라도 쓰겠다고 돌공장 앞에까지 오긴 했으나,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들 서성대기만”하는 그야말로 조직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못한 무리(군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자 노인들의 수수방관하는 태도에 진저리치고, 할머니들의 절규에 이끌려서, 결국 마지못해 엉거주춤 시위에 합류했던 영희가 메가폰을 잡고서부터 시위는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힘이 세지도 못하고 돈이 많지도 않은 가난한 사람들의 힘은 답답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명중, <저항, 사랑, 공동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85-86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8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