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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하기의 무용함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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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명백히 전도된 감정이다. 이로부터 세계에 대한 저항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변경 불가능한 세계는 난공불락이고, 거기에 저항하기란 무용한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세계는 더욱 공고해지고, 한편 세계의 지배적 가치를 승인하고 내면화하는 순간부터 주체들은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다시금 아래는 영희와 그녀의 남편 철수의 대화이다. “불법이건 합법이건, 이제 그만 가아, 알았지?” 영희는 철수의 채근에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렸다. “당신이 계속 돌공장 일에 휘말리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다. “눈앞에서 할머니들이 당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악이 나오더라고오.” 철수가 이마를 찡그리며, “하여간 나쁜놈들의 세상이야아. 공장이 불법이면, 공장가서 데모를 할 것이 아니고 관청을 가야겠구만.” “그 말 해주까아?” “알아서들 하겠지 뭐어.” 그와 그녀는 그들이 살던 동네 재개발 사업 탓에 철거민 신세가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외진 시골 마을까지 흘러들어와 살고 있다. 그들 역시 자본-권력의 피해자이다. 아울러 세상이 ‘나쁜놈들’의 소유라는 것을 아주 잘 안다. 게다가 그런 세상으로부터 할머니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때 영희는 분노한다. 반면 철수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자신들과 상관없는 문제라는 것 그리고 당사자 문제는 당사자가 알아서 할 테지, 하는 식의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무기력과 방관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방관에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는 체념이 타인의 고통에 눈감아도 상관없다는 식의 도덕적 알리바이가 제공된다. “(…) 언제 한번이라도 세상이 없는 놈 편이 되어준 적 있냐? 정부? 노조? 대책위? 세상천지에 믿을 데가 어디 있어. 결과적으로 순진한 놈들만 피 보는 거야.” 위의 인용문은 할머니들의 투쟁에 가담한 영희에게 그만 두기를 종용하면서 철수가 다그치듯 뱉어낸 말이다. 냉소적인 주체, 다른 말로 저항의 예봉을 앞질러서 꺾어버린 주체는 결코 윤리적인 주체도 될 수 없음이 드러난다. 그러한 주체는 개인은 개인일 뿐이라는 폐쇄적인 동일성의 지옥(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고립된 주체, 곧 외톨이lonely crowd에 불과하다. 이 외톨이들을 지배하는 것은 예의 피해의식과 허무주의가 착종된 염세주의이다. 따라서 그들은 세계 일반에 대한 부정 그리고 날선 증오에 압도된다.  
 
정명중, <저항, 사랑, 공동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79-81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7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