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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의 연대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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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사의 사상이 갖는 리얼리즘, 그리고 반전평화의 논리를 인정하더라도, 그 사상이 일본 사회를 넘어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혹시 이 사상은 피해자주의를 통한 공감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그것이다. 실제로 전후 일본의 역사는 전쟁 체험에 기반 한 파토스의 공유라는 의례를 통해 자기연민의 정서를 공유하고, 이를 국민 · 민족 공동체의 공감으로 투사함으로써 타자들을 엄격히 배제하는 폐쇄적인 국민 · 민족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길로 나아갔다. 오다가 난사의 사상을 외치면서도 다른 한켠에서 피해자 체험의 한계를 토로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우선 피해자체험에는 그 체험에 일부러 기대고자 하는 일종의 ‘아마에’(어리광-인용자주)가 있었다. 그러한 아마에를 ‘피해자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면, 그 의식에 안이하게 의지하게 되어 자신이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전쟁수행자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모호하게 되어버린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전쟁수행에 자신이 가담한 정도를 엄격하게 계량하고, 이와 자신의 피해자체험을 준별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많은 경우 양자는 분리하기 어렵게 묶여 있기 때문에 준별은 곤란한 작업이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이 어떤 순간에는 가해자였을 지도 모른다는 의식을 우리 자신이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거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모두가 무차별, 무한정으로 피해자이며, 누구나 ‘속았다’는 기묘한 결론이지만, 물론 그러한 결론 위에 서면, 누가 누구에 대해 어떤 점에서 가해자였는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속였는가’라는 점을 추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難死」の思想>>). 그것은 사상화(혹은 일반화)되지 못한 체험이 종종 빠지기 쉬운 함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해자 의식은 이렇게 철저히 부정적인 함의만을 갖는 것일까. 이에 대해 나가사키에서 피폭을 체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후 일관되게 원수폭(原水爆) 금지운동에 관여해온 이와마츠 시게토시岩松繁俊는 피해자로서의 입장을 철저히 추구해나갈 경우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피해자로서의 입장을 마지막까지 추구해가면 두 개의 국면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는 타국의 피해자와의 공통성이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엾은 피해자를 만들어낸 가해자라는 존재에의 인식이다. 전자는 전쟁피해자로서의 공통인식에 의한 국제연대의 자각이며, 후자는 피해자 인식의 극한에서 가해자 인식에로의 의식의 전환이다(岩松繁俊, <<反核と戦争責任 : 「被害者」日本と「加害者」日本>>, 1982). 전후 일본사회는 오히려 피해자로서의 의식이 박약했기 때문에 가해자로서의 의식과 인식 역시 박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나아가 피해자 인식의 심화가 피해자 일반에 대한 공감으로, 나아가 이러한 피해를 야기한 권력에 대한 비판, 가해 인식에 대한 자각, 그리고 그 결과 전쟁책임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와마츠의 논리이다. 이러한 그의 논리는 전후 경험의 구조적 특질인 혼돈과 유토피아의 결합, 비참과 신성함의 결합과 같은 양의적 결합의 전형적 외양을 만들어내는 생성 핵으로서 수난, 즉 전쟁 희생자로서 죽은 자들, 일본제국의 억압 아래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한 식민지 사람들, 일본 국내의 부랑아, ‘팡팡걸’이라 불리던 창부 등과 같은 수난의 체현자들로부터 전후 경험을 다시 상기할 것을 촉구했던, 전후 일본의 비판적 지성 후지타 쇼조藤田省三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후지타 쇼조, <<정신사적 고찰>>). 다시 말하면, 수난의 공유, 나아가 희생의 연대를 통한 공통감각을 형성함으로써 체험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경험을 복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진, <애국과 동아시아>,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309-311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30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