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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전국과 패전국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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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은 아마도 패전의 경험에 대한 천착과 이어질 것이다. 전사자에 대한 애도의 문제만 보더라도 애국심, 정의, 그리고 희생 등의 담론이 지배적인 승전국과 달리 패전국에서는 전시 하에 제창된 국가의 정의에 대한 회의나 반발, 국가나 군대에의 불신은 패전에 의해 그 불만을 억누르는 힘이 소멸하면서 폭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전쟁 중에는 위대한 ‘사명’으로 여겨지던 국가의 목표와 정책들이 단지 광포한 군부 권력과 테러에 사로잡힌 자원 쟁탈을 위한 식민화에 지나지 않았다고” 이야기되는 상황은, 어찌됐건 지난 체제를 수용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에게는 악몽처럼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승자의 전제를 받아들였을 때 “전시기에 감내해야 했던 고통이나 육친의 죽음은 단순히 개죽음으로 변질되고, 또 전장에서 싸우다 죽은 육친의 행위 혹은 전후 국제재판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범죄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2006년에 동시 개봉해 화제가 되었던 두 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치러진 ‘이오지마 전투’라는 한 역사적 사건을 전후 6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승전국인 미국과 패전국 일본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 내러티브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현재 워싱턴의 국립묘지에 당당히 서 있는 ‘성조기를 든 미국해병들’이라는 동상의 모델이 되었던, 이오지마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베트남 전쟁 이후 그 정당성을 상실해버린 “미군은 정의로운 군대”라는 신화를, 그 신화가 완성된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태평양전쟁이라는 전쟁의 성격 자체, 즉 파시즘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의미 자체에 회의의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 반면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공격해 들어오는 미군을 맞아 섬을 수비해야 하는 일본군의 시점에서 전투를 그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쟁의 성격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기보다는, 패전(전멸=옥쇄)이 확실시되는 죽음의 공간에 던져진 일본 병사들의 고뇌, 다시 말하면 국가의 정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자신들의 소중한 일상, 그리고 떠나온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일반 병사들이 겪게 되는 고난과 비극적인 죽음에 더욱 무게중심을 둔다. 물론 두 영화 모두 동일한 미국 감독(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미국 자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미국 중심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일본 내에서 만들어진 다른 영화들, 예를 들어 <남자들의 야마토>, <출구 없는 바다>에서도 이러한 내러티브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난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인 감독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패전(무조건 항복)의 경험을 가진 한 사회가 지난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공유해야 할 것인가(자국의 전사자들을 영웅이라고 부를 수 없는, 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개죽음이라고도 말하기 힘든)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들을 읽어내는 것이 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이영진, <애국과 동아시아>,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300-302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300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