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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전후론」이 던진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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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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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고백을 해두자면 내게 전쟁의 기억과 죽음을 둘러싼 국민국가적 상상력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촉발시켰던 문제의 텍스트는 1995년 발표된 가토오 노리히로加藤典洋의 「패전후론」(<<군조群像>> 1995년 1월호 게재, 이후 1997년에 다른 두 편의 글과 함께 <<패전후론>>이라는 동명의 저서로 출간되었고, 그 다음해인 1998년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었다)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아시아에 대한 사죄와 망언이 되풀이되는 전후 일본의 현실을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인격분열로 비유하면서, “지금도 예를 들어 3백만의 자국의 사자는 말하자면 그늘에 가려진 존재이며, 저 야스쿠니문제는 이러한 상황의 정확한 음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3백만의 자국의 사자를 ‘깨끗한’ 존재(영령)로 애도하기 위한 내향적인 자기, 하이드의 시도”라고 진단한다. 90년대 후반 역사주체논쟁이라고도 불린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논고는 끝나지 않는 전후의 끝나지 않는 속죄와 끝나지 않는 반성에 대해 질려 있던 사람들에게 확실히 새롭고 매력적인, 즉 ‘무료한 전후’를 끝내는 즉효성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처방전이었다. 더구나 걸프전쟁 이후, 참가국 중 가장 많은 전비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국제적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는 자국의 현실에 불만을 갖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는 것은 전후 일본 사회의 감정의 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가토오의 논리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전후 일본은 호헌파라는 외향적인 자기와 개헌파라는 내향적인 자기로 인격 분열되었다는 식의 전제는 지극히 강압적인 이분법적 발상이다. 또 그 전제 아래 3백만 일본인 사자와 2천만 아시아 희생자를 대비시키면서 2천만 아시아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애도를 위해 ‘우리’ 3백만 일본인 사자를 먼저 애도해서 진정한 주체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논의는 ‘우리들 일본인의 명예’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언설과 상당부분 겹쳐진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일본인이라는 수사 아래,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죽음들이 내셔널한 일본인의 죽음으로 회수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그 전쟁이 의롭지 않은 전쟁,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전쟁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책임에 관해서는 어째서 일본의 3백만 사망자들에의 애도를 2천만 아시아의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나 사죄에 앞세울 것을 주장하는 걸까? 침략자들의 비극에 대한 애도를 그들의 희생이 되었던 사람들의 비극에 대한 책임보다 앞세운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다카하시 테츠야高橋哲哉를 위시한 진보 진영의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토오의 문제제기가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발생한 자국의 전사자의 애도에 대한 공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일본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틀로서 ‘비틀림’이라는 메타포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전시기에는 아시아 해방을 위한 성전에서 희생된 영령으로 추앙받았던 이들 전사자들의 제사가 패전 후 연합군 총사령부에 의해 금지되고, 나아가 전후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지난 전쟁 역시 침략전쟁이라는 인식을 받아들여야 했던 전후 일본사회는, 지난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들의 죽음에 대해 적절한 애도를 하지 못한 채, 평화의 초석이라는 애매한 수사로 일관해왔다. 문제는 전후 한 시기 일본 사회의 감정의 구조를 적절하게 대변해왔던 이 수사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평화의 초석이라는 수사 자체가 지난 전쟁은 일본 사회 내에 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그 희생을 딛고(그 희생자들의 가호로) 전후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국가로 성장했다는 일본 사회 내부의 공감대를 충족시켜줄 수는 있지만, 냉전 체제의 해체 이후 지난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 아시아적 차원에서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국내용 수사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전쟁 책임이라는 친숙한 관용구로 집약할 수 있는 가토오의 논의는 그의 비판자들이 보기에 논리적인 파탄이야 어찌됐건, 결과적으로는 적지 않은 수의 일본인의 실감에 강한 호소력을 지니며, 그렇기 때문에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이 책이 한국사회에서는 창작과 비평이라는 대표적인 진보진영의 출판사에 의해 번역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의 논리가 한국의 진보진영 지식인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 상당히 고무되어, 한일 지식인 간의 대담에서 “기시 수상으로 대표되는 우익 민족주의자든 공산당 같은 좌익 민족주의자든 단지 그들의 입장에서 반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일정한 민족적 특성과 민족적 감정을 지닌 일본의 대다수 대중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백낙청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이러한 대안에 응답하고자 하는 시도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일본 민중 속에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현실로 남아 있는 민족감정, 민족의식을 애시 당초 깨끗이 국수주의자에게 양보해버리고 도대체 얼마나 실질적인 작업을 해낼 수 있을 지-외국의 민중은 그만두고라도 일본인 자신을 위해-의아스럽다고 생각한다.”는 백낙청의 발언을 일본의 혁신파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논의에 대한 정당화의 논리로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가토오가 소개하고 있는 백낙청의 발언은 원래의 맥락에서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만, 현충원이 성역화되어 있는, 그리고 천안함의 희생에 대한 이의제기가 터부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가토오의 논리는 민족 자체를 터부시함으로써 민주와 애국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는 일본의 진보 진영의 논리에 비해 신선하게 다가왔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자, 그렇다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미국에는 알링턴이 있고, 한국에는 현충원이 있듯이, 일본에도 전몰자를 추도하는 시설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일본에는 그런 공식적인 시설이 없다. 과거에는 야스쿠니신사가 그런 역할을 했지만, 전후 GHQ의 지령에 의해 일개 종교법인으로 전락한 상태다. 야스쿠니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공식적인 시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도 새로운 국립 추도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사회에서 탄력을 얻어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은 당연한 논리일까. 아니, 오히려 그러한 국립 전몰자시설을 만드는 것에 끊임없이 저항해온 전후 일본의 역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영진, <애국과 동아시아>,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97-300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9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