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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그리고 비교의 유령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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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그 해 봄, 나는 도쿄에 있었다. 일본 가고시마에서 필드워크를 마치고 돌아와, 필드에서 수집한 자료들의 더미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일본 열도의 최남단 가고시마는 고구마 소주의 산지이자 활화산 사쿠라지마桜島와 모래찜질 온천으로 한국인들에게도 꽤 알려진 관광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곳은 일본 우익의 정신적 지주(우리에겐 정한론征韓論의 주창자로 더 잘 알려진)인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이자,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는 ‘특공긴자’(特攻銀座: 특공대로 넘쳐나는 마을이라는 뜻)로 번성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지난 전쟁의 기억이 현대 일본 사회에 어떻게 다시 환기되고, 또 그것이 하나의 정치적 힘을 갖게 되는가를 지역의 맥락에서 살펴보면서 그것이 또 중앙의 정치와 연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다는 것이 가고시마에 들어가기 전 연구계획서에 끄적거린 나름 거창한 연구목적이었지만, 실제로 필드는 그렇게 계획서대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좌충우돌과 우여곡절 끝에 필드를 마치고 다시 도쿄로 돌아온 후 한동안은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쯤 그런 나날을 보내고 나니 치워놓았던 자료들이 슬슬 유통기한 만료를 들먹이며 경고의 손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천안함 뉴스를 들었던 것은 그렇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들에게 어서 말을 해보라고 구애하며 논문을 구상하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천안함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의 정치사에서 그렇게 색다른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군함이 ‘북괴’의 공격-물론 그 공격이 우리나라의 정론 신문이자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자부하는 한 대형 신문이 제기했던 것처럼 정말 북괴의 비밀병기인 ‘인간 어뢰’ 공격, 즉 내 연구 테마이기도 한 ‘특공’인지는 모르겠지만-을 받아 격침되었고, 그 결과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장병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희생을 전 국민적으로 애도하며, 또 그런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른 북괴에 대한 복수심을 더욱 고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들어야 했던 이야기였다. 아마 그 이야기가 2010년의 내게 낯설게 들렸던 것은 남한이라는 땅을 벗어나 바다 건너 일본에서 그 소식을 접했다는 것, 그리고 더욱이 특공의 성지 가고시마에서의 필드경험을 거친 이후였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핀 근대문학의 아버지이자 독립운동가인 호세 리살이라면 그 신비롭고도 도착적인 경험을 비교의 유령이라는 매혹적인 문구로 표현했을 것이다. 사실, 천안함이 왜 침몰했는지, 그 이유를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인류를 저 멀리 달나라로 보낼 수도 있는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부서진 선체까지 확보한 시점에서 그 침몰 원인을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 문외한인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어찌됐건 그것은 내 전문 지식 바깥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발표된(하지만 개봉 이틀 만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상영이 중단된) <천안함 프로젝트> 역시 내게는 작품 자체의 내용보다는 오히려 왜 이런 영화를 둘러싸고 외압설이 제기되는지가 신비로울 뿐이었다. 그 당시 내게 낯설음을 주었던 것은, 적어도 원인이야 어찌됐건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그들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이의제기도 할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저 강고한 터부였다. 매스컴은 연일 장병들 개개인의 이력과 초상, 그리고 오열하는 유족들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자숙 모드를 만들어갔다. 그들의 죽음은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그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드는 비국민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들의 죽음을 희생으로 환치시키며 애도하는 것은 국민국가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앤더슨의  
 
이영진, <애국과 동아시아>,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92-296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9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