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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 폭력과 위로의 역설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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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전쟁의 역사적 과정은 한국사회에 ‘반공/애국’을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것으로 의미화 했다. 이 과정을 달리 말하면, 비개연적인 남녀가 사랑이라는 의미론을 통해 개연적인 것 즉 친밀 관계의 형성을 통해 결합하듯이(니클라스 루만, 정성훈 외 옮김, <<열정으로서의 사랑>>), 애국의 의미론을 통해 비개연적인 폭력의 주체와 대상이 서로 결합한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실제 비개연적인 두 주체를 결합시키고 있는 폭력은 시선에서 사라져버리고, 오직 하나의 공동체와 그것을 대표하는 국가의 관계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분단과 전쟁의 경험은 이후 한국사회에서 ‘반공/애국’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국가폭력을 낳았다. 전후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은 간첩사건을 조작해 진보당을 해산시키고, 정적 조봉암을 ‘사법살인’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 및 고문·치사 행위를 비롯해 계엄령, 긴급조치 등도 모두 국가안보를 위한 ‘반공/애국’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한국사회의 ‘반공/애국’의 의미론은 식민과 탈식민의 경험을 배경으로 분단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이후 재생산되며 전사회적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칼 슈미트가 말한 “행위로서의 전쟁”은 종료되었으나 “상태로서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공/애국’의 의미론은 여전히 전후 한국사회의 기저에 깔려있다.(김동춘, <<전쟁과 사회>>, 돌베개) 문제는 애국의 의미론이 공동체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출현한 국가라는 수단을 목적 그 자체로 만들어 버렸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반공/애국’이라는 기표는 식민과 전쟁의 경험을 의미화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국가 없는 개인과 공동체를 상상할 수 없게 하고, 국가에 대한 당위론적 사랑을 지시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오직 ‘국가이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자기지시적인 사랑의 의미론이 등장했다. 결국 이런 의미론 속에서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되며 애국의 이름으로 국가의 폭력성은 은폐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반공/애국’의 의미론이 지배 권력의 전유물로,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전후 분단질서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속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반공/애국’은 거부나 의심이 아닌 생존을 위해 받아들이고 내면화해야 할 규범으로 다가왔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의미론 내에서 스스로의 삶의 방식과 내용을 만들어갔으며 자신의 삶을 설명해갔다. 반공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애국의 의미론은 본질적으로 텅 빈 기표와 같은 것이었다. 단순히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논리는 자체의 내용을 갖지 못한 빈약한 이념이었다. 때문에 전후 한국사회의 많은 저항세력들은 반공을 기치로 민주주의의 제도화, 인권 신장, 권력의 부정부패 척결, 경제발전, 빈부격차의 해소 등을 요구하며 ‘반공/애국’의 의미를 전용轉用하면서 지배 권력과 경쟁하였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통해, ‘반공/애국’의 의미론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멸공, 승공과 같은 적개심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발전, 안정, 성장, 근대화와 같은 또 다른 형태의 관념으로 치환되기도 했다. 또한 지배/저항의 투쟁 과정에서 자유, 민주, 정의, 통일과 같은 가치와 착종되는 등 무정형의 운동을 통해 의미의 자기증식을 이루어 갔다. 역으로 이런 의미의 자기증식은 국가와 그 구성원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지으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국가를 구성하고 변화시켜왔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반공/애국’의 의미론은 한국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폭력과 위로의 역설로 작용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국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만들면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을 정당화시켰던 논리였고, 다른 한편으로 ‘반공/애국’의 의미 투쟁의 역사 속에서 국가 및 그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게 했던 상징화된 매체이기도 했다. 즉 그것은 한국현대사의 상흔이 고스란히 담긴 표지이자 오늘날 한국사회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감성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폭력과 위로의 양가성으로 인해 애국의 의미론은 현재도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봉국·오창환, <근대 국가와 사랑>,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89-291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8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