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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다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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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전쟁기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를 지향했던 애국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당시 신문을 통해 그 풍경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신문 기사의 제목이나 내용 중 주목되는 것은 나라, 조국, 국가라는 어휘가 동일한 의미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점이다. 동시에 나라 사랑, 조국애, 애국, 호국이라는 어휘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애국포로, 애국청년, 애국여성, 애국단체, 애국지사, 애국용사 등과 같이 특정 개인과 집단을 호명하는데 있어 ‘애국’이라는 접두어가 밀착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애국행진곡, 애국복권, 애국공채, 애국대회, 애국반, 애국미米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당국의 전시 시책과 관련한 명칭에도 애국이라는 어휘가 결합되어 있다. 일종의 ‘애국’이라는 접두어의 과잉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애국과 관련된 다른 어휘와의 의미 관계 속에서 ‘비非애국’의 의미와 행위를 분명하게 확정짓고 있다. 가령 애국포로라는 명칭은 반공애국포로, 자유포로, 국련포로, 국군포로, 미군포로 등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반면, 이에 대조적으로 북한포로, 괴뢰傀儡포로, 중공포로, 공산포로, 용공국군포로 등에 용어가 의미의 근접성을 띠면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전쟁기 휴전결사반대 북진통일 혈서 <<경향신문>>, 1953.6.26. 즉, 한쪽에는 ‘애국/자유/국련/미군/국군’의 의미망이 설정되고, 다른 쪽에는 ‘공산/중공/괴뢰/북한/용공국군’의 의미망이 배치됨으로써 적과 아의 의미구조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애국은 곧 ‘자유’로 상징되는 국제연합 내지는 미군과 함께 하는 것이며, 비애국은 ‘공산’으로 대표되는 중공과 그 괴뢰인 북한에 협력하는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애국은 냉전 세계와 이념을 준거로 한 단순한 타자와의 구별을 넘어서, 타자를 비민족적으로 악마화 시키는 과정에서 ‘나(국가)’에 대한 애착 관계를 신체에 각인시키는 감성이기도 했다. 이번에 중공이란 놈들이 연합국의 신의적인 경고를 물리치고 무엇 때문에 한국의 국경을 뚫고 들어왔는가.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만주의 지역적인 숙명으로 보아서도 “쏘련”의 주구走狗라는 낙인을 씻지 못한 채 그들의 앞재비가 되어 김일성 허수아비 집단을 돕는 흉내를 내면서 한국을 한꺼번에 샘키려하고 있다. (…) 사람만보면 죽이고 여인이라면 보기만하면 겁탈하고 능욕주는 쏘련놈과 오랑캐들이 우리의 “유엔”군과 국군의 용감한 돌격에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일에 삼팔선을 넘어온다면 우리의 어머니와 그리고 안해 딸자식 누이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만하여도 몸서리치는 터이다. (…) 배달민족은 총이 없으면 부엌에서 부지깽이를 농촌에서는 칼이 없으면 낫을 들고 다같이 손에 손을 잡고 놈들을 내쫓지 안니하면 자자손손이 우리들은 살수 없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만 할 것이며 (…)(<<동아일보>>, 1950.12.6.) 이 전쟁은 ‘쏘련의 주구(앞잡이)인 중공(오랑캐)과 허수아비 김일성’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사람만 보면 죽이고 여인이라면 겁탈하고 능욕주는’ 이들에 맞서 유엔군과 함께 싸우는 것이 현재 배달민족의 사명으로 부여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추상적 이념은 ‘주구, 오랑캐, 허수아비, 겁탈, 능욕’ 등과 결합되어 “몸서리치는” 것으로 신체화되고 있으며, 그에 대조해서 반공이라는 기치 역시 ‘부지깽이, 칼, 낫을 들고’ 싸우는 구체적 행위로 그려지고 있다. 이제 애국은 반공이 아니라 비민족적이고 악마적인 타자의 폭력으로부터 ‘우리의 어머니와 안해 딸자식 누이를’ 지키고자 하는 사랑의 감성으로 대처된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을 지키고자 하는 ‘유엔군과 국군’은 곧 나와의 정서적 일치를 이루는 대상이 된다. 이처럼 한국전쟁기 애국의 의미는 해방 직후 그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제 애국은 민족과 그것의 정치기구인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자유/공산’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열된 세계 속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자유 대한’에 충성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이것은 애국과 애국적 행위를 냉전Cold War에 의해 변화된 세계 속에서 새롭게 의미화 한 것이자, 동시에 그에 기초해서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바꿔 말해 해방 직후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염원했던 민족공동체에게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요구하는 분단국가는 그 정당성이 결여된 것이었다. 즉 국가와 그 국가의 구성원은 물리적 폭력에 의해 결합되어 있었지만 항상 둘 사이에 비개연성으로 인해 언제든 결별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의 의미론은 이념에 의해 양분된 보편 세계를 상정하고, 그 보편 세계를 준거로 ‘자유 대한’이라는 파트너와의 친밀관계 속에서 개인 스스로 새로운 정체성을 내면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체화된 감성과 결합된 애국은 그러한 친밀 관계와 정서적 일치를 형성하는 상징화된 매체였다.  
 
김봉국·오창환, <근대 국가와 사랑>,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86-289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8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