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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없다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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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없다 이제 우리가 탓할 것은 당신도 아니고 세계도 아니다. 당신과 세계를 그렇게 사랑하도록 가르친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었다. 우리는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때마다 “세상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 거짓 위안에 감싸인 채, 나는 누구이며 세계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그 세계는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 도대체 우리를 위한 세계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건지를 더 묻지 않았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삶이 헛된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비열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건 최후의 보루다. 세상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다 지친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그렇게 사랑하다 지쳐서 더는 사랑할 게 없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그럴 때 위안이 되어주는 말이다. 나는 하산 아저씨에게 당부하고 싶었다. 이제 스스로를 사랑해도 된다고. 아저씨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럴 자격이 없는 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사랑에 대해 말해왔다고. 그럴 자격이 없는 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자기애를 왜곡해왔다고. (…) 눈부신 하늘과 푸른 나무와 그것이 품은 생명들. 그런 때가 있지 않던가. 세계가 선명한 의미가 되어 소나기처럼 와락 덤벼드는 순간. 지나가는 비 한 줄금에 영혼마저 흠뻑 적셔버린 그 순간이 지나고,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저 스쳐 지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절로 눈물이 났다. 하산 아저씨는 까닭 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이해해주었다. 그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가 아름답다는 걸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손홍규, 『이슬람 정육점』(2010))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쉽게 자기애를 왜곡한 결과다. 진정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은 모든 사랑으로부터 지친 후에야 비로소 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사랑이 끝난 그 자리에서 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사랑하다가 그것으로부터 거절되었을 때 싹트는 인식이다. 아름다운 세계가 내 것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슬픔 속에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랑을 말해온 사람들은 타인의 눈물과 상처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애는 세계로부터 좌절당한 자들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자격과 같은 것이다. 우리 시대는 온통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 배신과 좌절, 분노, 그 무엇이 됐든 간에 어떻게든 그것들을 치유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매일 병증을 호소하고 서로에게 상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 박사’와 ‘A’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A: 김 박사입니다. (…) 최소연 씨, 아무리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어선 안 됩니다. 노력을 그만두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상처 입고, 스스로를 비하하게 되며, 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노력이라는 말속엔 이미 이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표출이라는 의미도 수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최소연 씨. 어머니를 정면으로 마주 보시기 바랍니다. 최소연 씨가 어머니를 계속 피하기만 한다면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최소연 씨는 지금 어머니가 두렵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어머니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게 맞을 겁니다.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배신당했다고, 어머니에 대한 나의 애정이 좌절되었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자기방어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앞세운 것이겠지요. 어쩌면 두려움보다는 분노가, 치유에 있어서는 훨씬 더 수월할지 모릅니다. 분노라는 감정에는 어쨌든 애정이라는 요소가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 사실은 지금 어머니 또한 많이 당황하고, 좌절해 있을 것입니다. 최소연 씨가 먼저 손을 내밀어 어머니의 상처를 다독여주십시오. 어머니에게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알아보고, 함께 풀어나가는 노력을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 그것만큼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데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보다 정면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 -Q: 아니요, 아니요. 김 박사님. 제가 듣고 싶은 것은 그런 말씀이 아니고요, 김 박사님께 있었던 일들, 김 박사님과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일들, 그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거예요. 그때마다 김 박사님은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 술을 마셨는지, 혼자 담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지, 달리기를 하셨는지,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예요. 정말이지 그 이야기들을 듣는다면, 그러면 좀더 힘이 생길 거 같아요. (…) -Q: 김 박사님, 김 박사님…… 김 박사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잘 들었어요. 하지만 김 박사님…… 이 개새끼야, 정말 네 이야기를 하라고!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네 이야기 말이야! 나에겐 지금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김 박사, 이 개새끼야.(이기호, 「김 박사는 누구인가?」(2013)) 김 박사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왔던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준비된 고귀한 어록들이 과연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디고 있는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었던가. 이해하라, 사랑하라, 그리고 치유하라, 이런 아름다운 권유가 여기저기 넘쳐나는 데도 우리의 하찮은 상처 자국은 왜 치료될 수 없는 것일까. 무엇보다 지금 그런 다양한 사랑과 치유의 말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김 박사’,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랑에 관한 철학적 진리나 달콤한 말들이 아니라 우리의 상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바로 당신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누구나 아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구체적인 경험이 들어 있는 바로 당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서 들은 적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당신만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겐 절실하게 필요하다. 어디에서 그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인가. 세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안에 있다. 이들은 세계를 사랑할 수 없는 그 실패의 순간에도 세계 안에 있는 것이며,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에서조차도 이미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가, 사랑은. 우리가 확인하려는 사랑이 영원한 곤경이자 난문難問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세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제목은 취소되어야 한다. 사랑할 수 없는 자들에게 이미 세계는, 없다. 이제, 이토록 사랑할 수 없게 된 ‘나’와 아마 ‘나’ 자신일지도 모를 ‘당신’ 그리고 좀처럼 진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세계’를 심문할 차례다.  
 
한순미, <세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들>,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67-272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6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