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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의 제도화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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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즈가 지적한 대로 “시장 레퍼토리들과 자아 언어들의 점진적 융합”이 감정자본주의의 핵심적 면모라고 할 때, 이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는 최근에 범람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다. 리얼리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연출된 서사적 내용이 자기계발 담론과 동형성을 보여준다는 점은 이미 다양한 비평적 논의를 통해 지적되어 왔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이 음악의 청취와 관련하여 일으키는 핵심적 문제 한 가지는 포착되지 않았던 것 같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음악을 감상하는 청취자들이 일반적인 음악 감상에서보다 훨씬 더 과장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게 되지만, 그러한 정서적 반응이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심미적 반응으로부터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는 노래를 들으면서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누가 탈락하고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누가 더 권위자의 인정을 받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며, 심지어 (최근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는 <히든싱어>의 경우) 모창 가수들 속에서 진짜 가수를 가리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오디션 참가자가 자신의 현실 속 사랑 이야기를 뒤섞어 가면서 발라드풍의 ‘사랑 노래’를 부를 때 청취자는 종종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쏟으며 그 노래를 듣지만, 그러한 정서적 행위는 ‘이 노래에 몇 점을 줄 것인가’ 하는 차가운 합리적 행위와 구별할 수 없도록 뒤섞여 있는 것이다. 감정자본주의의 사랑노래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냉소적으로 드러내주는 문제적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산업이 대중적 청취의 논리를 새롭게 구성해가는 사이에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우리는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는 것, 우리의 신체가 음악이 주는 심미적 체험을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루즈가 말하는 ‘상상력의 제도화’에 갇힌 사랑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문화산업을 통해 상품화되어 제공되는 거침없는 성적 이미지들과 도식화된 낭만적 사랑의 서사들을 소비하는 동안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물질적 관계로서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져만 간다. 감정자본주의에서 “상상력으로 무장한 문화는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욕구해야 하는지 일종의 원본을 제시하며 우리로 하여금 이를 따르라고 강제”한다.(에바 일루즈, 김희상 옮김, <<사랑은 왜 아픈가>>, 돌베개) 이 지점에서 일루즈의 감정자본주의 논의가 던져주는 기초적인 쟁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것은 욕구에 충실하여 발휘되는 자유라는 가치가 심리학적 조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것은 언제나 사회적·경제적으로 조건화된다는 점이다. ‘상상력의 제도화’에 대한 저항은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당한 욕구를 저 ‘차가운’ 자본주의적 관계로부터 탈환하여 사회 속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최유준, <음악하기와 사랑하기>,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01-203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0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