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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하기와 정체성 구성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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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하기 역시 사랑하기의 배타성과 비슷한 사회적 맥락에서 배타적 특성을 갖고 있다. 내친 김에 미국의 사례를 조금 더 들어보자. 미국의 음악하기는 계급적 이해관계와 인종적 구성이 문화생산과 소비의 여러 장에서 역동적으로 교차하는 흥미로운 인류학적 탐구 주제다. 관련하여 2007년 1년 동안 미국에 머물던 필자의 흥미로운 음악적 체험 한 가지를 간략히 소개해 볼 만할 것 같다. 나는 그해 6월 15일에서 17일까지 ‘허클베리핀 블루그래스-컨트리 음악 축제’에 참가했다. 캘리포니아주 빅터빌 지역에서 해마다 아버지의 날(6월 셋째 주 일요일) 주말기간에 대규모로 거행되는 음악 축제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막 고지대의 드넓은 벌판에서 수천 명을 헤아리는 축제 참가자들이 음악감상과 캠핑을 즐기는 풍경은 그 자체로도 낯설었지만, 이 풍경을 더욱 스펙터클하게 해주었던 요소는 그 많은 축제참가자들 가운데 백인이 아닌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축제 현장의 절대적 소수자였던 나로서는 이 점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로 나는 농담 삼아 캘리포니아에서 백인들을 한꺼번에 수백, 수천 명씩 목격하고 싶다면 블루그래스-컨트리 음악축제에 가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빅터빌에서 열린 블루그래스-컨트리 음악 축제에서 캠핑족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자유로운 잼 연주 모습. 이 사진에 포착된 사람들도 모두 백인이다. (필자 촬영) 미국에서 블루그래스나 컨트리 음악은 흑인들의 블루스와 대척점에서(양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주류 백인들의 정체성과 관련한 민요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블루스나 재즈가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 백인들에게도 폭넓게 수용되면서 ‘흑인음악’으로서의 특성을 조금씩 완화시켜 온 반면, 블루그래스나 컨트리 음악은 ‘백인음악’으로서의 특성을 줄곧 고수해왔다. 즉,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백인 재즈 뮤지션이나 블루스 뮤지션들은 흔히 접하게 되지만 흑인 컨트리 뮤지션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컨트리 음악 애호가들의 압도적 다수가 미국내 공화당 지지파로서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도 이 점에서 이해가 되는데, 영화 <딕시칙스-셧업 앤 싱 Shut Up & Sing>(2006)에서 보고되듯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컨트리 음악 애호가들이 드러낸 극우적 파토스는 폭력적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컨트리 음악의 경우는 조금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특수한 정체성의 공유와 구별짓기의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는 점은 음악하기의 보편적 특징에 해당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민족주의적 의미부여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클래식 음악하기의 경우도 스몰이 지적하듯 서구화와 자본주의화를 경험한 나라에서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부르디외 식으로 말해 자신들의 문화자본에 따라) 서구 사회를 모델로 한 합리적․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지향을 공유하고 탐구하는 인류학적 제의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각각의 음악하기는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내밀한 정체성 규정을 담게 되며 따라서 ‘우리’에 포함될 수 없는 타자를 억압하는 배타적 성격을 아울러 가진다. 같은 맥락에서 대중음악은 또한 세대 간의 정체성 탐구를 위한 배타성을 종종 드러내는데, 미국에서 1950~60년대에 록큰롤 열풍이 불었을 때나 한국의 1990년대에 서태지 신드롬이 일어났을 때 기성세대가 느꼈던 당혹감은 (한국에서의 경우 ‘신인류’라는 표현이 함의했듯) 전혀 다른 종족을 대하는 데서 오는 정서적 충격과 같은 것이었다. 1970년대 통기타 세대들의 ‘쎄시봉’ 음악에 대한 지향이나 최근의 이른바 ‘응사(케이블 방송사 TVN의 히트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줄여 부르는 말)’ 열풍에서 1990년대의 대중가요가 집중조명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음악은 과거의 집단적 기억을 소환하여 세대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사실상 가공할 문화적 장치다. 결론적으로 음악하기는 서로 다른 취향과 아비투스가 다양한 정체성(‘우리’)의 구성을 둘러싸고 문화생산과 소비의 장에서 여러 방식으로 경합하는 하나의 사회적․정치적 실천이다. 물론 사랑하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최유준, <음악하기와 사랑하기>,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92-194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9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