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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기의 배타성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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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우리의 신체는 다 같은 신체가 아니며, 우리의 취향은 다 같은 취향이 아니다. 취향은 사회적으로 위계화되어 있으며 우리의 신체 역시 위계화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하기’의 현실적 조건과 관련하여 이 점을 직관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예컨대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농촌의 총각이 명문대를 졸업한 서울의 중산층 처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 굳이 사회이론이나 계급이론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명한 사람들은 누가 조언을 해주지 않아도 “쳐다보지 못할 나무”는 알아서 쳐다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계급화된 신체’의 조건 속에서 형성된 사랑하기의 제한된 사회적 장場에서 욕망의 실현을 둘러싼 경합을 벌일 뿐이다. 예외가 있기는 하다. 부르디외가 말하듯, “생물학적 유전의 논리가 사회적 유전의 논리와는 독립적으로 때때로 다른 모든 측면에서는 전혀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장 희귀한 신체적 특성, 예를 들어 미모 같은 (사람들은 이것이 다른 위계구조를 위협하기 때문에 종종 이를 ‘치명적’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속성을 부여해 주는” 경우다. ‘낭만적 사랑’의 논리가 관철되기 시작한 이래 ‘팜므파탈femme fatale’의 존재가 끊임없이 대중에게 매력을 발휘해 온 것 자체가 역으로 현실에서 사랑하기의 완고한 위계적 구조를 방증한다. 사랑하기가 일정한 취향을 드러내면서 차별성을 내포하기 때문에(부르디외 식으로 말해 아비투스들 간의 친화성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구별짓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배타성을 드러내는 행위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계급간의 배타성만이 아니라 민족 내지는 인종간의 배타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사랑하기의 중요한 실천적 국면인 결혼을 계속해서 예로 들어 보자. 성적 자유주의와 다문화적 삶의 방식이 가장 일반화되어 있다고 간주되는 국가들 가운데 하나인 미국의 경우 인종간 결혼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2012년에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현재 미국 전체 가구의 8.4%가 이異인종간의 가정이다. 이 통계를 발표한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20년 전에 비해 2.5배가 증가한 수치라고 하니 20세기 말까지 미국의 다문화 가정은 4%도 채 안 되었던 셈이다. 물론 미국의 전체 결혼 대비 인종간 결혼 비율은 최근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고 하며 2010년에 치러진 결혼의 15%가 인종간 결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일민족’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의 전체 결혼 대비 인종간 결혼 비율이 2005년에 이미 13.5%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인종을 초월한 사랑하기’라는 것이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도 생각보다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선진화된 다문화 사회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인종 그룹들 사이에서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을 없애기 위해 합리적 노력이 견지되는(여기에는 무자비한 인종차별의 역사와 이에 저항한 투쟁의 역사적 과정이 전제되어 있지만) 사회라는 뜻이지 각 개인의 차원에서 인종을 초월한 사랑하기가 적극적으로 실현되는 사회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실제로는 ‘닫힌 사회’라는 점과 관련되기보다는 위계화되고 계급화된 신체에서 비롯된 사랑하기의 본질적 배타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최유준, <음악하기와 사랑하기>,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90-192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90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