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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로서의 음악과 사랑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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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랑’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둘은 오로지 동사로서의 쓰임새밖에는 없다. 그러면서도 둘 모두 마치 명사로서의 쓰임새가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 예컨대 ‘음악의 이해’라는 말은 음악이 마치 실재적 차원을 가진 하나의 사물인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인데(예컨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의 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음악이든 사랑이든 명사로 쓰일 때는 사실상 그 개념의 지시체를 혼동하여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작품이나 음악양식이 곧 음악은 아니며, 연인의 존재나 특정한 감정상태가 곧 사랑은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의 이러한 실천적 함의를 강조하면서 크리스토퍼 스몰이 ‘음악하기musicking’라는 용어를 제안했던 논리적 맥락에 비추어볼 때, 사랑 역시 ‘사랑하기loving’라는 용어로서만 성립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에리히 프롬의 고전적 저작 <<사랑의 기술>>도 원어 제목은 ‘The Art of Love’가 아니라 ‘The Art of Loving’이다. 물론 니클라스 루만이 <<열정으로서의 사랑>>에서 ‘사랑’을 커뮤니케이션 매체나 상징으로 다룰 때와 같은 적절한 명사적 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학이나 언어학적 분석의 맥락에서 기술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뿐이다. 일상에서 음악과 사랑이 ‘음악하기’와 ‘사랑하기’라는 실천적 방식으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명사적으로 인식하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 가령 ‘음악작품’을 ‘음악’ 그 자체로 간주(혼동)하는 것은 (비서구 음악이나 민속음악의 경우 ‘음악작품’의 개념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듣기’와 ‘연주하기’를 포함한 폭넓고 다양한 음악적 행위를 특정 음악작품에 대한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사랑을 명사로 보는 데서 생기는 문제점도 이와 비슷하다. ‘사랑을 찾는다’라는 관습적 표현이 함의하듯 명사로서의 사랑은 일차적으로 연인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역시 사랑의 문제는 적절한 연인을 고르는 것, 곧 연애 상대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축소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선택을 기다리는 사물화된 음악작품이 쉽사리 문화상품으로 전락하듯이 사랑의 대상 역시 사물화되기 쉬우며 심지어 상품처럼 거래되기도 한다. 
 
최유준, <음악하기와 사랑하기>,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85-187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8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