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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의 DNA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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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근대시기에 국권 상실을 경험했다. 천신만고 끝에 이룬 해방 조국은 남북이 분단되고, 이어 1950년 형제간에 전쟁을 치렀다. 국권의 상실과 전쟁을 경험한 우리의 기억은 국가라는 존재에 신성성을 부여하게 되고, 국가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부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해방 후 한국의 정치엘리트들은 여순사건을 기회로 반공국가 건설과 반공국민 형성 작업을 전면화했다. 위정자는 나라사랑의 이름으로 호명을 하면 대중은 애국의 주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성한 존재로서 국가는 정당성을 확보했다. 심지어 성매매 행위가 애국인지 아니면 민족적 수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국전쟁 발발 후 국가는 성매매 여성에 대해 위안부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했다. 양갈보라는 이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멸시와 비하와는 별개로, 그녀들이 미군이나 한국군을 위안하고 사기를 높여줌으로써 침략군을 격퇴하고 통일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민족의 정조를 팔아먹은 존재라는 것이 그녀들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군을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정성으로 위안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열심히 한국을 위해 싸우도록 하라”, “몸을 팔아서라도 열심히 돈(달라)을 벌어 조국에 바쳐라”고 했다. 이것이 위안부들에게 요구되는 애국이었다(김득중 외, <<죽엄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애국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나라사랑 단체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의미의 형용사가 등장했다. 애국, 조국애, 애국가, 애국청년, 애국여성, 애국학생, 애국용사, 애국지사, 애국용사, 애국포로, 애국참전동지연맹, 애국반, 애국행진곡, 애국대회 등이 그것으로, 한마디로 ‘애국’의 횡일이었다. 애국은 나와 적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국민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애국을 실천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비국민으로 배척되곤 했다. 국가는 각종 제의를 만들어 기념했고, 이때마다 이순신, 안중근, 유관순, 김구, 안창호 등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전몰용사가 호명되었다.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한 이들의 기념관이 만들어졌고 국민들은 그 숭고한 뜻을 기리며 나라사랑을 다짐하곤 했다. 나라사랑은 점차 우리 몸속의 부품이 되어갔으며 오랫동안 현실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우리 몸속의 DNA가 되었다. 한국의 대중운동 현장마다 빠질 수 없는 상징은 곧 애국가와 그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였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폭력에 저항했던 광주항쟁의 핵심적 키워드는 애국이었다. 시민들은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드는 외에도 국가의 의식을 집행했다. 시체는 대형 태극기로 덮였고 희생된 시민들에게는 묵념이 올려졌다. 광주의 해방공간을 지배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와 애국가였다. 나라 사랑이 체화를 넘어 DNA가 되었다는 점은, 국권 상실과 분단의 기억을 간직한 한국인들에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김창규, <사랑의 역사적 흔적들>,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67-69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6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