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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가와 사랑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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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현대는 변혁의 시대로 수많은 혁명가를 낳았다. 연애가 혁명과 관련을 가지게 된 것은 애정이 없는 결혼에서 얻은 상처가 격렬한 혁명적 열정을 가지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같은 고향의 여성과 결혼할 것을 강요당했다. 부모의 뜻에 따른 결혼 생활이 특히 신사상을 가진 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사랑이 없는 결혼에 반항하는 방법은 고향을 떠나는 길밖에는 없었다. 그들 중 일부 청년들이 나아갈 길은 혁명 밖에 없었다. 연애에 대한 동경심이 혁명에 대한 열정과 미묘하게 얽혀 있었던 점에서, 공산주의 혁명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택동의 경우 강제된 결혼에 대한 반발이 혁명가로서의 일생을 시작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 곽말약의 부모는 열아홉 살의 아들을 약혼시키자 5일 후 그는 집을 떠나 다시는 아내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곧 사랑이 없는 결혼이 이들을 혁명으로 내몰았던 셈이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의 경우 혁명을 통해 사랑을 찾았다. 애초에 그는 평화의 시대에 여성과 결혼이 중요하지만 투쟁의 시대에 결혼과 사랑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단정했다. 어떤 남자도 결혼을 하면 독립성을 잃어버리고, 연애를 하면 더욱 강한 속박에 묶이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남자는 개인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자기 신체의 내적인 자유까지도 잃어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연애와 결혼의 희생물이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오랫동안 그는 아가씨와도 절대 말을 하지 않았으며, 어떤 곳에서도 아가씨들과 접촉을 피했다. 심지어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었던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들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수업을 즉시 포기하기까지 했다. 사랑은 그러나 혁명가에게 혁명의 열정을 불어넣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이들이 혁명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준다. 또한 남녀 사이의 친밀한 애정은 심리적 안정과 깊은 동지애를 갖게 하는 등 현실적으로도 혁명가에게 사랑은 중요한 내용이 된다. 혁명가도 역시 사람이고 사랑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자 공통적인 감정이다. 결국 그는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자 온 세상이 친근하게 느껴졌으며 빛과 영광으로 가득했다. 사랑을 하게 되자 젊고 행복했던 때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고, 마치 다른 별 위에서 새 생활이 시작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가장 사소한 일조차도 흥미롭고 유쾌하게 느껴졌다. 동반자 의식은 점점 자극을 받아 높아만 갔으며, 두뇌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몸은 새로운 활력으로 넘쳐났다(님 웨일즈, 송영인 옮김, <<아리랑>>). 이처럼 사랑은 혁명가에게 혁명의 열정을 불어넣기도 한다.  
 
김창규, <사랑의 역사적 흔적들>,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65-66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6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