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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족할 때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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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TV 광고는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대중문화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중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지만, 쉽사리 포착하지 못하거나 뭐라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이미지와 스토리로 가시화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상품을 오버랩 시켜 기억하게 만드는 기술이 바로 TV 광고다. 이를 위해 광고카피라이터는 다양한 설문조사와 온라인 투표와 같은 쌍방향 소통을 통해 감성자료들을 수집하고, 그로부터 치밀한 계산 하에 소비자를 공략할 공감 포인트를 뽑아낸다. 이처럼 TV 광고는 대중의 감성과 생각을 복사해서 단 15~30초 분량의 이미지와 스토리로 재현해내는 매체다. 한 가지 예로 1999년 이래 사랑에 대한 다양한 감성 트렌드를 주도해 왔던 <2% 부족할 때> 음료수 광고가 있다. 이 광고는 처음엔 톱스타를 기용해서 인지도를 높이려는 단순한 기존 광고형식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2001년 이미지에 스토리가 가미된 4편의 시리즈 형식으로부터 시작해서 2002년 이후 스토리에 음악이 결합된 뮤직비디오와 유사한 형식으로 변모해 갔다. TV 광고형식의 변모는 스토리, 이미지, 음악이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고 소비욕구를 촉발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에다 사랑이 주요테마로 곁들어진다. 더 나아가 “스마트 태그” 기술(음료수 패키지에 있는 컬러태그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CF 전체내용을 볼 수 있게 만든 기술)을 통해서 상품화된 사랑 스토리, 사랑 이미지, 사랑 음악은 소비자의 감성에 한층 더 깊이 파고들어간다. 그럼으로써 TV 광고는 소비자들이 사랑에 대한 상징적 표상을 구성할 때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우리의 논의맥락과 관련해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광고카피문구가 말하는 사랑의 형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선 2001년 정우성과 장쯔이를 모델로 한 광고카피문구는 광기, 후회, 열정, 희생의 계기를 지닌 사랑의 형상을 묘사한다. 정우성: 사랑해선 안 되는 여자가 있다. 그걸 몰랐다. 보고 싶어... 우린 미쳤어. [......] 정우성: 왜, 왜, 왜, 우리 사랑하면 안 되니? 니가 그러면 어떡해, 바보야. 난 어떻게 하라고... 지켜줄게. [정우성 독백: 난 사랑이 지겨웠다. 그러나 이 여잔 그 사랑에 목숨을 걸었다] 사랑하는 게 뭐가 힘들어. 우리 그냥 사랑하면 되잖아.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장쯔이: 날 버려. 이 사랑의 형상은 어떤 이상적인 세계와 마주치면서 하나의 주관적 세계가 뒤흔들리거나 상실되는 경험으로서 열정적 사랑을 연상시킨다. 그에 비해 2002년 정우성과 전지현을 모델로 하는 광고카피문구는 속 시원하게 말 못하는 괴로움, 순수함, 애틋함, 애절함이 전달되는 사랑의 형상을 그려낸다. 정우성: 너 왜 자꾸 내 눈에 밟혀? 잊을만하면 나타나고 또 잊을만하면 나타나고. 전지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니가 나한테. 정우성: 너, 처음 볼 때부터 나 좋아했지? 전지현: 저리가! 죽고 싶어? 쏴 버릴 거야. 아퍼? 그래 나도 아퍼. 날 사랑하지마. 정우성: 보고 싶잖아. 이 사랑의 형상은 열정적 사랑의 계기와 자기반성적 계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적 사랑을 연상시킨다. 낭만적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자기상실과 자기반성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도야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눈뜰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말하자면 이미 존재하는 것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현실과 다른 가능한 현실 사이에서 운동하는 것이 바로 낭만적 사랑이다. 흥미롭게도 2002년은 국민의 정부가 4년차 되던 해인 2001년 8월 IMF로부터 차입한 195억불을 전액 상환함으로써 한국전쟁 이래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듬해였다. 하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체제로 전환되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랑과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 2003년 광고카피문구에 나타난 사랑의 형상은 이전과 구별되는 뚜렷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 해 8월은 참여정부가 중장기적 과제로 미국 등 거대경제권과 “FTA 추진 로드맵”을 마련했던 때이기도 하다. 전지현/조인성 커플과 전지현/지진희 커플을 모델로 한 광고카피문구는 현실과 이상이 대립 혹은 분열된 사랑의 형상을 보여준다. 전지현: 너 뭐야? 니가 뭔데 나한테 큰소리야? 레스토랑에서 저녁 한 번 근사하게 사준 적 있어? 니가 남들처럼 자가용 타고 날 어디 데려다 줘봤어? [......] 사랑이 밥 먹여 줘? 조인성: 거짓말 하는 것들은 사랑할 자격도 없어! 씨... 전지현: 사랑만 갖고 사랑이 되냐... 전지현: 사랑을 하면서 돈이 없다는 건 참 불쌍한 일이다. 보고 싶은 걸 못 보고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다면 젊은 날이 너무 비참해지지 않을까. 라면만 먹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지진희: 돈이 없다는 건 사랑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상대가 어렵더라도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하고 더 힘든 시간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젊은 날의 사랑은 사랑만으로 행복해야 한다. 이상적인 사랑만 갖고 사랑이 실현되지 않는다. 사랑만으로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상적이다. 사랑은 현실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사랑이 현실과 하나가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비판적 놀이다. 하지만 사랑하기 위해서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할 때부터, 즉 사랑이 사회의 탁류에 휩쓸리기 시작할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취업하지 못한 사회의 패배자에게 연애와 결혼은 불가능하고, 출산은 꿈도 꿀 수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 2009년 남성 5인조 가수그룹 ‘빅뱅’을 모델로 한 광고카피문구는 아주 생뚱맞다. 그에 못지않게 생뚱맞은 한국형 녹색 뉴딜사업 “4대강 살리기 사업”이 2008년 12월 29일에 시작된 지 얼마 안 지나서였다. 이 광고카피문구는 사랑의 형상을 혈액형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A형의 사랑은 11m다. 권지용: 틀린 사랑은 없어. 조금 위험한 사랑이 있을 뿐... B형의 사랑은 게임이다. 탑: 니 입술에 내 입술을 붙이면 불장난, 쉬운 여자, 재미없어! O형의 사랑은 민들레다. 권지용: 그런다고 걔가 너 좋아할 거 같애? 정신 차려. 그 기지배 너 가지고 노는 거야. 대성: 사랑이 멈추면 심장도 멈춰. 사랑은 민들레다. A형은 열정적 사랑을, B형은 밀고 당기는 게임과도 같은 계산적인 사랑을, O형은 순수한 사랑을, AB형은 한 번 깨지면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냉정한 사랑을 하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하지만 사랑과 혈액형 사이의 상관관계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행하는 속설, 즉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유사과학의 변종일 뿐이다. 왜 사람들은 사랑과 혈액형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싶은 걸까? 그것은 어쩌면 좋아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상대의 마음을 심리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설명도식에 따라 평가, 측정, 예견해서 분류, 관리, 통제하고 싶은 심리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것은 신뢰할 수도 없고 의리를 지킬 수도 없는, 좀비들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비롯된 불안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틀린 사랑은 없다고 말하지만,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을 합리적으로 평가, 측정, 예견해서 체계적으로 분류, 관리, 통제하려는 태도나, 상대의 특정한 부분만 가려서 좋아하는 마음은 사랑이라는 말에 맞지 않다. 사람을 사물처럼 대하면서 좋아하는 마음은 사물화된 사랑, 죽어 있는 사랑, 틀린 사랑이다. 왜냐하면 사람, 삶, 사랑은 동원어同源語이기 때문이다(서정범, <<국어어원사전>>). 살아 있는 상대의 유기적 전체를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상대를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엄한 인격체로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상대의 전체와 마주치는 경험은 나의 온몸으로 느껴지는 전율이다. 이러한 전율은 주체와 객체, 정신과 육체의 분리 이전의 신경감응으로부터 비롯된다. 존재하는 어떤 것 그 이상의 아우라를 마주 대하는 느낌을 미학에서는 심미적審美的 느낌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느낌이 바로 사랑의 느낌이 아닐까? 어떤 존재의 전체를 감응한 느낌은 머리로 분석되자마자 사라진다. 그래서 사랑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랑을 완전히 알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사랑에 관한 앎과 무지 사이에서, 심미적 느낌이 불현듯 찾아든 순간에 찰나적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사랑을 경험할 뿐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이다. 2010년 광고카피문구는 요즘 20대 젊은이들의 연애풍경을 재현한다. 친구와 애인, 우정과 사랑을 구별하는 척도는 나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느낌이 오는지의 여부다. 72% 해보면 알아요 [손은서 독백: 사귈까, 말까? 친구할까, 애인할까? 손은서 이장우에게 다가가 키스한다] 손은서: 아, 아닌가보다 야. 아, 집에 갈까? [자막: 은서한테 당해보니까 어때?] 이장우: 완전 좋던데, 나 왔어, 느낌 왔어. 절대로 이건 사랑이야. [.....] [자막: 솔직히 말해봐. 너도 느꼈지?] 손은서: 내가 뭘 느껴. 음... 느낀 거 있지. 해보니까 알겠더라. 친구끼리는 키스하면 안 된다. [자막: 그이가 나에게 어떤 존잰지 모르겠을 때 그냥 해 보세요. 두근하고 심장이 말해줄 꺼에요] 이 광고카피문구가 말하고 있는 느낌은 입술이 닿았을 때 곧바로 전달되는 말초적 감각이다. 이러한 감각이 어떤 존재의 전체 혹은 그것의 역사성에 대한 반응으로서 심미적 느낌과 단박에 구별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여기의 짜릿한 느낌, 현재의 맹목적인 충동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충동을 넘어 성장하는 경험, 즉 사랑의 경험일 수 없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매력적인 이성과 충동적으로 키스하고 섹스하는 행위는, 낭만적 혹은 선정적 스토리와 이미지를 지닌 상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소비하는 행위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사랑에 목마른 소비자들은 음료수 자체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료수 광고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마신다. 음료수를 낭만적으로 소비하는 행위의 반복 속에서 사랑과 광고는 일심동체가 되고, 살아 있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잃어간다.  
 
김기성, <사랑의 변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35-41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3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