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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의 물질성/ 문자 메시지의 해석학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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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문자 메시지와는 달리, 편지는 손으로 잡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편지가 갖는 이 물질성은 사랑 소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편지를 주고받았던 중요한 동기 중 하나였다. “왜 내가 다시 당신에게 편지를 쓰냐고요? 사랑하는 이여, 그런 질문일랑 하지 마세요. 사실인 즉 난 당신에게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당신의 사랑스런 손길이 이 편지를 받으시겠지요.” (롤랑바르트, <<사랑의 단상>>, 번역 일부 수정)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페티시즘에 대한 프로이트의 글에서 재인용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의 손가락, 목, 다리, 머리카락 등의 특정한 육체 부분 뿐 아니라 옷, 안경, 신발 등 그의 몸에 걸쳐지는 물건들, 나아가 그의 목소리, 걸음걸이, 웃거나 커피를 마시는 모습들에서도 사랑의 긴장과 충동을 느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 현상은, 본래 성적 목표의 대상인 성기가 아닌 대상들에, 가상적인 ‘성기적 특성’이 투사되어 일어나는 페티시즘의 일종이다.(Sigmund Freud, Drei Abhandlungen zur Sexualtheorie) 사랑하는 상대에게 보내는 편지,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편지는 페티시즘의 중요한 매개체였다. 내 손이 닿았던 종이, 내 입술이 입맞춤했던 봉투가 ‘당신의 사랑스런 손길’에 가 닿을 것이라는 상상은, 편지가 사랑 소통의 주요한 매체로 자리잡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그녀가 내게 보낸 이 메일과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에는, 베르테르에게는 쓰여진 글의 내용보다 더 중요했던—“사실인 즉 난 당신에게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상대 육체의 흔적이 없다. 거기 있는 건 그/그녀가 손가락으로 눌러 입력한, 표준화된 폰트로 변환되어 내 메시지 창에 떠오르는 그/그녀의 문장들이다. 여기에는 베르테르로 하여금, 딱히 할 말이 없음에도 로테를 향해 편지를 쓰게 만들었던, 페티시즘적 욕구가 달라붙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김남시, <사랑이라는 소통의 매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8-29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