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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를 기다림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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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으로서의 사랑의 편지는 회답을 기다린다. 그것은 은연중에 상대에게 회답을 해야 할 의무를 지운다. 회답이 없을 경우 그 사람의 이미지는 변질되어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가 약혼녀에게 확고하게 설명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이다. ‘난 회답이 없는 편지는 쓰지 않을 것이요. 당신이 회답을 보내지 않는다면, 난 그 즉시 당신에게 편지 보내는 일을 중단하겠소. 사랑하는 이에 대한 계속적인 독백은, 그 사람에 의해 수정되거나 갱신되지 않는다면, 서로의 관계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낳으며, 서로를 낯설게 만든다오.(의사소통의 부당함을 받아들이는 자, 회답을 받지 않고도 부드럽게, 사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자, 그런 자야말로 어머니가 갖는 위대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번역 일부 수정) 사랑의 편지는 회답을 기다린다. 회답 편지를 기다리는 자의 고뇌를 바르트는,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 간접적으로만 암시한다. 회답을 받지 못하는 자는 ‘의사소통의 부당함’을 몸으로 느끼고 더 이상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편지를 통한 사랑 소통의 기다림, 그 기다림이 불러내는 불안은 전화를 기다릴 때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건 편지가, 서로 만나 얼굴을 마주하는 대화와는 구별되는, 문자 소통이기 때문이다. 대면 소통에서 메시지의 교환은 상대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동일한 시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상대를 향해 말을 하며, 상대 역시 같은 시공간에 있는 내게 반응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향해 발신된 나의 메시지는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전달되며, 그와 같은 시공간에 있는 나는 그의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상대가 내 말을 오해할 수는 있어도, 물리적으로 내 말이 그에게 도달하지 않을 수는 없다. 상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할 수도 있지만 이미 그것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편지를 통한 메시지 교환은 동일한 시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편지는 우선, 나와는 다른 시공간에 있는 상대에게 물리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상대와 나와의 물리적, 시간적 거리가 늘어남에 비례해, 내 편지가 상대에게 도달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은 커진다. 편지는 중간에 훼손되거나, 분실될 수도 있다. 그의 주소에는 배달되었지만 그는 아예 그곳을 떠나버렸을 수도 있다. 편지가 그에게 도달하고, 그가 회신을 보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시 내게 오기까지는 그 만큼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에 회답 편지를 기다리는 동안의 사이 시간은 다른 매체의 경우보다 길다. 사람들은 그 때의 불안을 ‘속으로는 일어나길 바라는 실패의 가능성’들로 위로한다. 이 과정은 약속 장소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과 비교될 수 있다. “우리는 만날 약속을 했고 그래서 난 기다린다. 서막에서 그 유일한 배우인 나는...그 사람의 늦어짐을 확인하고 기록한다. 이 늦어짐은 아직은 수학적인, 계산할 수 있는 실체에 불과하다. (나는 시계를 자주 들여다본다.) 이 서막은 흥분으로 막을 내린다. 즉 나는 ‘걱정하기로’ 결심하고 기다림의 불안을 터뜨린다. 그러면 제1막이 시작된다. 그것은 일련의 가정으로 채워진다. 만날 시간이나 장소에 어떤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다른 찻집으로 가볼까? 전화를 해볼까? 하지만 만약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가 나타난다면? 내가 안 보이면 가버릴지도 몰라 등등. 제2막은 분노의 막이다. 나는 부재하는 그 사람을 향해 격렬한 비난을 퍼붓는다. “그/그녀는 ~ 할 수도 있었잖아!”, “그/그녀는 그걸 잘 알면서!”...제3막에서는 버려짐의 불안이라는, 완전히 순수한 불안이 날 엄습한다(내게 도달한다?). 순식간에 나는 부재에서 죽음으로 이행한다. 그 사람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애도의 폭발. 나의 내면은 시체처럼 창백해진다.”(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번역 수정) 나는 상대의 회답편지를 기다린다. 나는 그것이 늦어짐을 확인하고 기록한다. 이 늦어짐은 아직은 수학적인, 계산할 수 있는 실체에 불과하다. (나는 자주 달력을 들여다본다.) 편지를 기다리는 이 서막은, 일련의 가정들로 채워진 제1막으로 이어진다. 주소를 잘못 적은 것은 아닐까? 내 편지가 배달 중에 분실되지는 않았을까? 그는 분명 회답을 보냈을 텐데, 그 편지가 혹시 다른 집에 배달된 것은 아닐까? 상황에 따라 이렇게 진행되는 제1막은 꽤 오래 이어질 수도 있다.  
 
김남시, <사랑이라는 소통의 매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3-25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