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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거의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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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덕분에 우리는 방을 떠나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고, 외출도 하지 못하는 기다림의 고뇌를 겪지 않아도 된다. 전화를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 없이 우리는 그저 평.소.처.럼 우리의 일상을, 우리의 삶을 진행시키면 된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살아가는 중에, 언제, 어디에 있든 우리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그저 받기만 하면 된다. 덕분에 우리는 기다림에 있어서 새처럼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그 자유의 정도는 기다림으로부터도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 우리는 거의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를, 한 장소에 붙들려 기.다.리.지. 않.아.도. 받을 수 있게 해준 휴대전화는 사랑 소통의 성격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우리는, 이제 불시에 호출을 받는다. 휴대전화는 참 기묘한 물건이다. 분명 내 것이지만,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건 멀리 떨어져 모습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가 얼굴도, 이름도 아니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 멀리서, 내게 ‘장착’되어 있는 이 기계를 작동시킨다. 휴대 전화를 개통한다는 것은, 그 익명의 사람들에게 나의 기계를 ‘멀리서 작동시킬’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내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나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 하나를 내어준다는 것이다. 저 ‘바깥세계’를 향해 자발적으로 내어준 리모트 컨트롤.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기계장치로부터 내가 잠을 자건, 식사를 하건, 책을 읽거나 화장실에 앉아 있건 아랑곳없이, 즉시 ‘잠금 해제’하고 응답하기를 요구하는 소집명령이 울려 퍼진다. 애인으로부터 불시에 내려온 소집명령에 응하지 못함은 더 이상 ‘집에 없었어’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곧바로 거절의 메시지—‘내 전화를 씹네!’—가 된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는 대신 조급해진다. 사랑 소통은 공격적이 된다.  
 
김남시, <사랑이라는 소통의 매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2-23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