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신부 - 서정주

애(愛)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성미기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위 시는 혼인 첫날밤에 신부를 오해하여 달아난 신랑이 4~50년이 지난 후에 찾아가 그대로 앉아있는 신부를 보고 손을 대자, 신부가 재가 되어 내려앉았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 편의 이야기를 초록과 다홍으로 대표되는 색채어 대비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신랑, 신부의 첫 만남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설화를 통해 한국 전통 사회에서 한국 여인이 지닌 사랑과 정절을 보여주고 있다. 신부의 입장에서 4~50년을 기다릴 수 있었던 마음은 다급한 어떤 것이 아니라, 여인의 정절을 지키고 있고 신랑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4~50년이 지난 시간, 신랑이 다시 찾아와 손을 대자 ‘초록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은 모습 자체는 사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재와 같이 내려 앉았다는 점에서 비극적으로 보인다. 
서정주, 『미당 서정주』, 문학사상사, 2002. 
이은미, 「구조주의 비평을 활용한 서정주의 시 분석 : 서정주의 [신부]를 중심으로」, 『어문연구』 제39집 4호,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