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썼다가 지워도’ 지울 수 없는 ‘사람’과 ‘감정’이 있음을 간결하게 반복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무심한 당신’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마음에 설레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냉정하고 얼음 같고 불같고 무심하고 징그러운’ 당신이라는 초반의 진술이 후반에 가서는 ‘그윽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스스로 ‘기쁨 같은 당신’이라 표현하고 있다. 결국 아닌척하지만 화자 스스로가 ‘지울 수 없는 얼굴’이라 인정하는 것은 ‘긍정’으로 닿을 수밖에 없는 사랑의 마음을 보여준다.
고정희, 『고정희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이경희, 「고정희 시의 여성주의 시각 연구」, 『돈암어문학』, 제21집, 돈암어문학회, 2008. 이경희, 「고정희 시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