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일까? 거기에 가봤자 또 속으로 유세차로부터 시작해서는, 약소하지만 흠향하소서 하고는 상― 향으로 끝내는 식이 될 텐데, 그래선 안 될 것 같아. 생각할수록 귀신들에게 얼마나 죄송한 일이야? 지고 또 지고, 맨날 제사문이나 씨부렁거리며 쏘다닐 거냐고? 패배한 몰골로. 그러니 자네부텀 가라고. 아직 패배의 책임을 짊어질 세대가 아닌 당신이 이번엔 앞서서 가보라구. 그래서 뭔가 희망의 연대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라고.
김소진의 첫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실린 「임존성 가는 길」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취재자 임존성에 같이 가다 중간 역에서 내린 후 실종되어버린 한 선배 기자가 후배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또 속으로 유세차부터 시작해서 약소하지만 흥향하소서 하고는 상-향으로 끝내는 식의 기념식전적인 애도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를 거부하면서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소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솔출판사(1993).
이영진, “오월의 마음을 찾아서: 80년 오월 이후 한국 사회의 ‘부끄러움’의 계보학,” 2015년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학회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