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기위 박대(奇偉博大)한 진인(眞人)이 있으니, 그가 바로 천수 윤공(天水尹公)이다. 공의 이름은 위(威)요, 자는 모(某)이고, 고(故) 원수(元帥)와 시중(侍中) 벼슬을 지낸 언이(彦頤)의 후예인데, 대대로 이름난 가문이다. 처음에 산중에 숨어 살면서 스스로 호(號)를 벽송거사(碧松居士)라 하였다. 그러나 명월주(明月珠)ㆍ야광주(夜光珠)는 어두움 속에 숨어 있을 수 없는지라, 이 때문에 마지못해 세상에 나와 벼슬에 종사하여 두루 높은 자리를 거쳐 벼슬이 국자사업(國子司業)에 이르렀다. 그 사람됨이 인후 온자(仁厚醞藉)하고 방정 염약(方正廉約)하며, 덕행과 문장이 다 구비해 결함이 없는가 하면, 술을 두어 말까지 마셔도 행동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일찍이 스스로 “장가든 뒤로부터 지금까지 다른 여인을 범한 적이 없다.” 했으니, 이 역시 보통 사람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무릇 몸가짐과 행동에 있어서 까다롭거나 자질구레한 절목은 생략하고 그 대체를 잡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다 재상의 기량이 있다 하여 원대한 기대를 걸었는데, 불행하게도 외직으로 나와 서도 유수(西都留守)가 되어 마침내 돌아오지 못한 채 죽었으니, 슬프도다. 하늘의 하시는 일이 이렇게 무심하실까. 공이 배척을 당할 적에 몰래 선동한 자가 있었는데, 공으로서도 그리 상세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전주(全州)에 장기(掌記)로 있을 때에 어떤 동료의 미움을 받았는데, 공이 마침 염찰사(廉察使)가 되어 나와서 지난날 나와의 사귐이 두터워 나에 대한 위로가 더욱 진지하고, 그들을 매우 박하게 대접하였으므로 감정을 품었다가 뒤에 다른 일을 기회로 삼아 은밀히 중상한 것인데, 이 사실은 끝내 비밀에 붙일 수 없다. 공이 세상을 뜨자, 마치 나의 백형이나 중형을 잃은 것 같아서 다음의 글을 올려 슬픔을 표한다. 윤위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