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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환유와 은유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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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만큼이나 삶과 죽음의 이접을 통렬하게 노래한 작품으로 정지용의 「유리창」이 있다.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갔구나! 이 노래를 통해 우리는 설움이 슬픔과 갈라지는 지점을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다. 유리에 어른거리는 ‘슬픈 것’은 나의 정념이 아니라, 파닥거리는 길이거나 보석처럼 박히는 물 먹은 별이다. 자식이 산새처럼 날아간 사건은 과거완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잊혀질 사건은 아니다. 그것은 내 삶으로 들어와 현재화한다. 그러기에 내가 대면한 차가운 유리에서 나는 참척의 슬픔을 대체해가는 은유의 고리들을 찾아낸다. 이러한 슬픔의 정념 역시 그레마스와 퐁타이유가 말한 개시적 변조로서, 절망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우리는 설움과 슬픔의 변별적 지점에 환유와 은유의 수사학이 있음을 알게 된다. 죽음이 환유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과 인접한 것들이 갖는 아픔만을 나타낸다. 시적 화자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주체이며, 이때 그 고통은 죽음과 인과론적 관계를 맺는다. 그저 죽음은 내게 고통을 주는 것이며, 그것은 삶과 이접되었어야 할 것이기에,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감정의 상처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설움이다. 그러나 죽음이 은유로 나타날 때, 죽음은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되면서, 시적 화자는 그 새로운 세계 속에서 미래를 기약하게 된다. 그 세계는 삶과 죽음이 연접한 곳이며, 이러한 연접이 현재를 인식론적으로 확충시킨다. 죽음이 과거에 있든 미래에 있든, 그것이 타자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죽음을 껴안은 삶은 죽음을 영원히 타자화시키는 신화를 해체한다. 그 모든 것은 억울하기만 한 설움이 아닌 삶에 대한 통찰에서 오는 슬픔의 정념을 촉발한다.  
 
송효섭, <설움을 넘어 슬픔으로-죽음에 대한 기호학적 스케치>,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33-135쪽. .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3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