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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념의 기술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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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인식론적인 서사를 구성하는 요소라면 거기에서 주인공은 그러한 죽음에 대한 양태성을 갖는 주체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 죽음은 그저 사건이 아니라,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정념은 쉽사리 기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절될 수도 분류될 수도 없고, 구조화시키기는 더욱 어렵다. 기호학적 사유로 정념을 포착해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죽음에 관한 한, 이러한 정념에 대한 기술은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죽음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주체와 대상 간의 이접을 가장 완전하게 실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것은 인식론적으로 새로운 차원의 연접의 서사를 생성해내고, 그로 인해 인간은 죽음을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이 죽음과 마주하여 갖는 태도 중에 가장 직접적인 것은 정념이다. 죽음이 만드는 신화가 강렬한 이유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정념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정념을 드러내는 담론은 또한 그 담론의 수용자의 강렬한 정념을 촉발한다. 그 정념을 무어라 기술하기는 쉽지 않지만, 여기서는 한국어에서 ‘설움’과 ‘슬픔’의 의미분화를 통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설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음’ 죽음의 제의에서 불리어지는 노래는 바로 그 죽음을 직접 접하는 현장에서 지표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죽음에 대한 정념을 가장 직접적으로 노래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상여소리는 타자의 죽음을 보내는 과정에서 갖는 정념이기에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이제가면 언제 오나 북망산천 멀다더니 눈 감으니 황천이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설워마라 명년 삼월 봄이 되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불쌍하고 애달프다 우리 인생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누나 여기에서 죽음의 세계는 ‘북망산천’이나 ‘황천’과 같은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 곳은 갈 수 없을 만큼 먼 곳이며 또 그래야 하는데, 허무한 죽음을 접하고 보니 그것은 바로 눈감으면 다다를 만큼 가까운 데 있다. 이에 대한 정념은 해당화가 가질 법한 정념에 비유되는데, 그것이 바로 설움이다. 여기에서의 설움은 ‘가지 말아야 할 곳인데, 가게 되었다’는 데서 비롯되는데, ‘가지 말아야’하는 것은 ‘가지 못하겠다’ 혹은 ‘보내지 못하겠다’는 욕망을 나타내는 양태성을 드러내며, 그러한 양태성은 그레마스와 퐁타니유가 말한 정념의 기호학에 따르면 담화 층위에서 기동상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이 죽음으로 인해 여지없이 좌절됨을 알게 될 때, 이는 담화 층위에서의 완료상을 예시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인식은 ‘할 수 있다’라는 능력의 양태성과 ‘할 수 없다’라는 무능력의 양태성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상여소리에서 화자는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누나’라고 함으로써 결국은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양태주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담화층위에서 더 이상 지속상이 유지되기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레마스와 퐁타니유가 정념의 기호학을 위해 새롭게 제시한 선조건 층위에서의 가동적 변조 역시 중단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념은 절망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절망은 주체가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함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러한 정념이 바로 설움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무가에서 흔히 ‘서럽구나 원통쿠나/또와서 서럽구나/ 혼아아-’라고 할 때 그 서럽고 원통한 혼은 씻김을 받아야 할 혼이며, 그래서 오로지 이러한 설움의 정념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상여소리나 씻김굿 무가에서의 인식된 죽음은 앞서 서사의 A)나 D)처럼 삶과 이접되어 있는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삶으로 틈입할 때, 인간은 그것에 대해 엄청난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당연히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인간이 그것을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그로 인해 자신 혹은 타자에 대해 설움이라는 정념을 토로하게 된다. 이성복의 「숨길 수 없는 노래1」에서 “하지만 나는 서러움의 얼굴을 알지 못하네/그것은 서러움의 비밀이기에”라고 한 것이나 「숨김 수 없는 노래2」에서 “내가 아직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노래한 것에서 우리는 설움이 그저 낯선 것이고 또 미완의 서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어쨌든 이러한 정념은 철저하게 서사의 통합체적인 관계 속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내가 겪은 고통의 직접적인 산물로서 더 이상의 인식론적 확충을 보여주기 어려운 것이다.  
 
송효섭, <설움을 넘어 슬픔으로-죽음에 대한 기호학적 스케치>,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29-131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2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