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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철학의 기원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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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완료된 죽음이 A)에 있다면, 나의 죽음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자리한다. D)는 미래 언젠가 닥칠 나의 죽음을 나타낸다. 그 죽음은 현재와 분리된 죽음이며, 따라서 삶과 이접된 죽음이다. 과거의 죽음이 타자의 죽음이었다면, 미래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 된다. 미래의 어느 시점이 현재와 이접된 것처럼 현재의 삶은 미래의 죽음과 이접되어 있다. 우리는 언젠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미래의 죽음에 얽매이지만은 않는다. 미래는 미래일 뿐이다. 미래를 미래로 남겨놓는 것은 현재를 극대화하여 미래가 틈입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현재의 극대화는 미래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허무를 극복하는 일이다.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서는 못노나니”는 바로 언젠가 죽음에 가까이가기 전까지는 현재의 순간을 최대한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현재의 극대화는 그러나 미래에 닥쳐올 운명을 잠시 잊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이때 미래의 죽음은 과거의 죽음처럼 /비밀/의 의소를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의 죽음은 어쩔 수 없이 현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C)에서의 죽음은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의 죽음에 대한 인간의 모든 인식을 나타낸다. 타자의 죽음이 기억됨으로써 나의 죽음이 기획된다. 모든 죽음의 철학은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은 미래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며, 또한 그러한 죽음에 대한 가치론을 보여준다. 죽음 이후에 대한 사유는 현재의 시점에서 삶의 윤리적 실천과 연루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윤리와 자비의 실천이며, 사랑과 공덕의 수행이다. 미래의 죽음에 대한 가치론이 현재의 삶의 가치론으로 연결됨으로써, 미래의 죽음은 현재의 삶과 연접된다. 허무주의나 현세주의가 이러한 것들 간의 이접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의 극복은 이들 간의 연접이 필연적임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죽음에 대비하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의 일이다. 그것의 극단적인 형태는 자결로 나타난다. 자결을 결심하는 시점부터 그는 이미 미래의 죽음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행위에 돌입한다. 자결 가운데서도 가장 극적인 자결로 손꼽히는 것이 <<삼국사기>>의 해명태자 이야기에 기록되어 있다. 해명은 이웃 황룡국 왕이 보낸 화살을 부러뜨림으로써 아버지인 유리왕의 노여움을 산다. 유리왕이 해명으로 하여금 칼로 목숨을 끊도록 하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왕의 명령을 따른다. 그러나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진의 동쪽 벌판에 창을 거꾸로 꽂고 말을 타고 그리로 몸을 던져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어차피 죽어야 할 것이라면, 칼로 자결하나 몸을 던져 창에 찔려 자결하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명은 누군가의 명령에 의한 죽음의 방법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죽음의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죽음을 스스로 창조해낸다. 기획된 미래의 죽음이 갖는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대비한다. 종교는 이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죽음 이후에 대한 약속만이 종교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허황된 혹세무민의 제도나 집단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죽음 이후에 대한 삶의 비전을 현재의 삶과 연루시켜 제시한다. 한 마디로, 현재의 삶이 미래의 죽음과 그 이후를 결정한다고 함으로써, 현실의 삶에 가치론을 부여하는 윤리성을 담보한다.  
 
송효섭, <설움을 넘어 슬픔으로-죽음에 대한 기호학적 스케치>,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26-127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2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