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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접에서 포섭으로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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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에서 불리어지는 바리공주 무가는 그것이 제의에서 불리어진다는 점에서, 그 제의를 나타내는 지표기호이지만, 씻김굿이라는 드라마의 줄거리를 다른 형상으로 재현함으로써 그것의 도상기호가 되기도 한다. 바리공주가 생명수를 구하는 여정에서 겪는 고통과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고 획득한 생명수로 부모의 목숨을 살린다는 줄거리는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씻김으로써 그를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씻김굿의 드라마와 닮아있다. 이것은 또한 터너가 말한 사회적 드라마의 일반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씻김굿이 삶과 죽음의 이접상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아직도 신화의 영역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바리공주 무가에서 생명수로 죽은 목숨을 살리는 것, 그리고 바리공주가 저승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죽음과 삶 간에 자유로운 변형이 일어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모티프들인데, 이는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차원 모두에서 죽음과 삶을 명확하게 구획함으로써, 죽음은 죽음으로 삶은 삶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무속적인 생사관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이는 앞서 A)에서 보았던 그러한 합리적이고 현세적인 생사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꼭 삶과 이접되어야 할 것으로만 인식되지는 않는다. 죽음에 대한 나쁜 기억이 죽음을 삶으로부터 이접시키는 반면, 죽음에 대한 생산적 기억은 죽음을 삶과 연접시켜 죽음과 삶의 상호작용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킨다. 타인의 죽음에 대한 뼈저린 기억은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삶 자체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그것은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들의 죽음을 접한 뒤, 갖게 되는 태도나 정념과 같은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타자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며, 이러한 예측으로 인해 삶이 한정적으로 주어져 있음을 뼈저리게 인식한다. 그리고 여기에 가치론이 개입한다. 한정된 삶이기에 그것의 가치는 더해지고, 그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와 같은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이 제기된다. 메멘토 모리. 인간은 늘 죽음을 기억해야 하고, 칼뱅의 말처럼 죽음을 대비한 자만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기에, 죽음은 반드시 삶과 이접되어야 할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B)는 A)와 대립관계가 아니라, A)를 포섭한 함의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어차피 바리공주나 세경본풀이와 같은 무속신화에서처럼 죽음과 삶을 오락가락할 수 없다면, 죽음을 삶으로 포섭하여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신에 대한 종교적 형이상학이 비롯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B)에서의 죽음은 현재진행형으로서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것의 기억과 마주친다. 그것은 늘 완료된 것이 아니기에, 현재 나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비록 그 실체가 /비밀/의 의소를 갖는 것이지만, 나는 그것에 대한 기억과 반성을 통해 그것이 갖는 신화를 벗겨낸다. 이는 앞서 진위판정의 기호사각형에서 있는 것을 나타나게 하는 /진실/의 의소를 갖게 됨을 말한다. 이는 제의적 행위를 통해 죽음을 되살려 삶 안으로 이끌어 들이거나, 그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을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맡겨져 있다. 
 
송효섭, <설움을 넘어 슬픔으로-죽음에 대한 기호학적 스케치>,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24-126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2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