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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으로서의 죽음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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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늘 서사 속에 내재한다. 한 개인에게 있어 시간은 늘 죽음을 향한 시간이다. 서사의 구성에서 죽음은 늘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이 명시적이건 암시적이건 간에. 혹은 과거시제로건 미래시제로건 간에. 이 세상에 죽음으로 끝나는 서사는 없다. 그저 죽음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영원한 ‘없음’으로 진입하는 것이지만, 죽음은 간접적인 것이기에, 그에 대한 검증을 남겨놓는다. 그레마스라는 기호학자가 제시한 서사 보편적인 프로그램은 ‘조종-능력-수행-검증’으로 진행되는데, 죽음은 조종할 수 있는 발송자도, 능력을 구비하거나 상태를 뒤바꾸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도 아니기에, 그저 검증의 대상으로 남을 뿐이다. 그레마스는 이러한 검증을 위와 같은 기호사각형으로 나타낸다. 서사에서 이러한 검증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따라 그 서사가 형상화하는 죽음의 신화와 탈신화화가 드러난다. 이때 죽음은 단지 하나의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건에 대한 기억 혹은 이러한 사건에 대한 예측을 포함한다. 이에 따라 죽음의 서사는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먼저 A)와 같은 과거완료로서의 죽음이 있다. 일종의 정리된 죽음이다. 대개 모든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된다. 그리고 잊혀진다. 우리는 과거에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리지는 않는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난다는 생각은 합리적인 사유의 소산이다. 도교적인 일사들의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그가 어찌 죽었는지를 알지 못했다.”(不知所終)과 같은 표현을 통해 우리는 죽음이 단지 멈추어진 것이 아니라 실종된 것임을 본다. 이는 죽음이 갖는 멈추어짐의 속성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멈추어짐은 한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그가 진행했던 서사 혹은 드라마의 멈추어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서사의 종결로 인해 죽음은 있었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비밀/의 의소를 갖는다. 죽음이 비밀로 남는 것은 그의 죽음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물리적인 완결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이 신화의 영역에서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를 보여준다. A)가 지나간 사건으로서의 죽음이라면 B)는 그러한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서의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은 반복되어 기억되면서, 뮈토스를 생성하며, 또한 끊임없이 인지와 행위를 호명한다. 그리하여 뮈토스와 로고스 간의 상호작용이 활성화된다. 우리는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 의미에 맞는 행위를 반복한다. 바로 그러한 행위를 제의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화적 주인공을 위한 제의는 두 가지, 즉 탄생과 죽음을 위한 제의이다. 탄생은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변형이고, 죽음은 ‘있음’에서 ‘없음’으로의 변형이다. 신화적 주인공의 탄생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자질이 그의 비롯됨으로부터 온다는 사유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국조신화에서 탄생에 관한 일화가 강조되어 드러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탄생만큼 죽음도 중요하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그것이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인간의 제의를 행한다. 누군가의 무덤을 만들고, 그리하여 그 무덤은 누군가의 죽음을 나타내는 지표기호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무덤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꽃 한 송이만 놓여있을 뿐인 소박한 무덤에 대해서도 기억을 위한 제의를 구성할 수 있다. 씻김굿은 이러한 기억되어야 할 죽음 가운데에서도 가장 끈질기게 현실에 관여하는 죽음을 막기 위한 제의라 할 수 있다. 완료되어야 할 죽음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죽음은 단지 기억되어야 할 죽음을 넘어서 삶과 분명한 이접상태로 가야할 죽음이다. 씻김굿은 이러한 삶과 죽음의 연접을 삶과 죽음의 이접으로 변형시키는 기호작용을 하나의 행위 드라마로 나타낸 것이다. 무당이 망자의 형상으로 만든 영대를 씻기는 정화의 의례는 삶과 연접된 죽음이 갖는 부정함을 씻김으로써, 삶과 이접된 죽음 즉 과거완료로서의 죽음으로 변형시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고를 푸는 절차에서 고를 푼다는 것은 역시 삶과 연접됨으로써 겪게 되는 고통으로부터 삶과 죽음을 완전히 이접시켜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과정을 연출하는 것이다.  
 
송효섭, <설움을 넘어 슬픔으로-죽음에 대한 기호학적 스케치>,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21-124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2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