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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저리와 깜뎅이의 연인공동체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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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주민등록증”(<<나의 이복형제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상징물인 ‘주민등록증’. 이를 통해 국가는 여전히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이주자의 이주 지위를 만들어 내고 변화시킬 수 있는 공식적인 권력을 발휘한다. 자본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하지만, 사람의 이동은 규제하는 아이러닉한 세계에서 수많은 이주자들은 합법과 비합법이라는 애매한 경계를 끊임없이 오가며 법적으로 예외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머저리와 깜뎅이 역시 남편에게 주민등록증을 빼앗겼고, 깜뎅이는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불법노동자다. 머저리의 남편은 이러한 주민등록증으로 머저리의 이동을 막지만, 머저리는 주민등록증의 허를 찌른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머저리를 대신해 통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들었고, 상처를 보듬어 줄 연인을 만들었다. 제도장치 밖에서 우정, 연인의 공동체를 만들며 현재를 부각시키고 있는 작가의 전략은 최소한 윤리적 강박이나 자폐증은 벗어나 보인다. 지하실의 시멘트 바닥에 사과상자 하나를 깔고 그 위에 인도 남자와 중국 여자가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은 엉덩이를 가져다 붙인 채로 서로의 얼굴을 묻고 있다. (…) 얼굴 중심에 몰려 있는 작은 눈과 낮은 코와 작은 입술을 가진 여자는 체구가 작은 이 남자를 자신의 일란성 쌍둥이로 믿고 있다. 빈약한 어깨를 가진 이 남자에게 넓적한 얼굴을 가진 이 여자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유일한 휴식처다.(이명랑 <<나의 이복형제들>>) 남편에게 매맞는 머저리에 대한 ‘나’(서술자)의 동정적 시선을 머저리는 거부한다. 오히려 그녀의 방식으로 남편의 폭력에 맞선다. 반전처럼 남편 몰래 통장을 만들고, 깜뎅이와 연애를 한다. 작가는 구성적 외부의 자리에서 더 이상 불안을 자폐로 살지 않고, 연대를 기획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생성할 수 있는 하나의 역능으로 바꾸어 내는 상상을 한다. 그러므로 공포와 불안을 신체의 파괴가 아닌 사랑으로 재전유한 ‘머저리’와 ‘깜뎅이’. 머저리와 깜뎅이의 ‘연인공동체’는 이들이 안고 있는 상처나 불안을 타인이나 자기에 대한 적대가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으로 재전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이주의 유령들이 저곳의 정주의 판타지를 해체하고 ‘지금, 여기’의 시공간과 대면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어정쩡한 연민의 시선이 거두어지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가출-질병/죽음으로 반복되는 동일한 서사는 한국문학작품 안에서 결혼이주여성의 서사를 재현하는 클리셰cliche가 되어 있다. 그녀들의 신체화된 슬픔이 전시되는 동안 우리가 또 다른 클리셰로서 다문화의 향연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리 시대 슬픔의 현장으로서.  
 
문재원, <이주의 유령>,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14-116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1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