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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의 위계화, 재배치되는 이주의 경로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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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의 홍지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홍지하는 한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동족(조선족)들을 보면서 슬픔과 회한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민족의 한(恨)이라는 보편성으로 확대시킨다. 그는 돈 때문에 다른 남자의 씨받이가 된 친구의 아내 지혜경을 질타하면서 한탄한다. 같은 조선족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어느새 보는 자/보이는 자, 말하는 자/듣는 자의 위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홍지하는 카밀과 닮은꼴이다. 이들은 사비나, 혜경처럼 국경을 넘어 들어온 이주민이지만 이동의 경로가 처음부터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데, 개인적 욕망의 달성보다는 공적 명분의 추구라는 공통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들은 슬픔, 분노의 감성마저도 위계적인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다. 이러한 감성의 위계는 다시 암묵적인 방식으로 도덕적, 사회적 배치를 조직하고 있다. 이러한 배치는 이미 인물의 재현 양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잘가라, 서커스>>의 림해화는 애초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한국에 왔으며, 「가리봉 연가」의 장명화는 아이가 있음에도 처녀라 속이고 결혼했고, <<바람꽃>>의 지혜경은 남편이 있는 몸으로 돈많은 남자의 대리모가 되었다. 「그녀의 나무 핑궈리」나 <<나의 이복형제들>>의 만자나 머저리는 저능한 지적 수준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남성들의 경우 작가, 연구원, 요리사라는 전문직에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은 개인을 넘어 민족의 혈통을 잇는다는 대의명분을 안고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온 ‘홍지하’나 발해의 후손이라는 정체성 확인을 위해 한국에 온 해화의 첫사랑, 고향의 발해풍 정원을 완성하기 위해 기리봉동에 온 양꼬치 요리사는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대의명분 위에 놓인다. 그러므로 이들의 슬픔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적 슬픔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남/여의 배치는 다시 공/사, 정상/비정상, 정신/육체, 성/속, 능동/수동의 영역으로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의 서사에 젠더적 질서가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젠더의 작동은 남/여의 감성 영역마저 공/사로 분리시키며 이를 위계화하고 있다. 한편, ‘민족의 대의’라는 공적 임무수행이 전진 배치되는 동안 결국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는 은폐되고 있다. 카밀이 전면화 되는 과정에 어느새 사비나는 존재감이 없어지고, 홍지하의 ‘혈통잇기’에 현대판 씨받이 지혜경은 온데간데 없다.  
 
문재원, <이주의 유령>,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08-109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0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