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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 성/속, 선/악 그리고 남/여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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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나마스테>>에 두 외국인 남녀 이주노동자가 등장한다. 연인이었던 카밀과 사비나. 이들은 네팔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다. 사비나와 카밀의 한국행은 출발부터 다르다. 사비나는 네팔에 남은 병든 부모와 칠형제의 생계 때문에 자본을 좇아 왔지만, 카밀은 “아버지의 돈에 염증을 내고” 사랑을 찾아 중세 기사의 망토를 입고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이미 사비나는 돈 때문에 카밀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와 동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카밀은 지구를 정화시키는 히말라야의 깊고 선한 눈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비나와 카밀의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성(聖)/속(俗)의 배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비나가 초국적 자본의 승리의 전리품으로 재현된다면, 카밀은 자본의 질서를 초탈한 티베트의 성소 카일라스 산과 장대한 만년빙하의 히말라야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비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돈을 쫓아가는 속물적 욕망에, 카밀은 타자지향적이고 현실초월적인 욕망에 배치되어 있는 셈이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카밀과 한국 여성 신우 사이에 딸이 태어나게 된다. 결혼을 앞두고 신우는 단란한 가족에 대한 꿈으로 맘껏 기대에 차 있다. 그러나 카밀은 아내와 딸과 함께 만들어 갈 내 가족보다는 천막에서 농성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몸이 향한다. 카밀의 슬픔은 ‘나’가 아닌 친구 ‘구릉’에 있고, 그 슬픔은 ‘구릉’의 손가락을 잘라간 대한민국을 향한 분노로 이어졌다. 카밀은 먹은 것을 토하며 울었다. .... 나.... 때문에.... 미치겠다는 것이.... 아.... 아니에요. 자기는 몰라. 누나.... 몰라.....여....여기.... 가슴에서 불....불이.... 불덩어리....막 치밀어 올라와요. 내 걱정.... 필요없어요. 왜.... 구릉이.....여기서......손....손가락도 잘....리고.... 죽어야 해요? 자기나라... 대....대한민국.... 그렇게 잘났느냐구요. 우리.... 네파리 사람.... 한국 사람보다 못....못하지 않아요. 다 착....해요. ... 나는... 죽어도 상관없지만요. .... 구릉뿐만이.... 아니에요.(박범신, <<나마스테>>) 사비나와 신우의 몸과 감정이 나와 내 가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카밀은 나를 벗어나 친구, 이웃, 세계를 향하여 확장되고 있다. 카밀과 사비나가 공/사, 선/악의 이분법 위에 놓여져 있는 한, 가족 이기주의에 배치되어있는 사비나의 슬픔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극복 대상의 위치에 있게 된다. 반면, 카밀의 슬픔은 개인의 그것을 넘어서고, 그 슬픔은 공분(公憤)의 명분으로 작동한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며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몸을 던진 카밀은 초월적 타자의 위치에, 혹은 새로운 영웅으로 탄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영웅이 탄생되는 자리는 주체의 폭력과 협상하고 있는 지점임을 간과할 수 없다. 변하지 않는 깊고 선량한 눈의 카밀이 그래서 위험하다.  
 
문재원, <이주의 유령>,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06-108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06페이지    E-BOOK 바로가기